이태백… 청년 실신… 암울한 현실

2010.02.22 02:22

공시족·홈퍼니·목찌… 신조어

최악 청년실업 시대 실상 반영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이모씨(24·여)는 올해 ‘5학년’을 다닌다. 졸업학점은 지난해 다 채웠지만 취업이 안돼 졸업을 한 학기 늦추기로 한 것이다. 겨울방학에도 매일 오전 학교 도서관으로 가 외국어와 기업체 인·적성 시험 준비를 하고 밤늦게 돌아오는 날의 연속이다.

이태백… 청년 실신… 암울한 현실

이씨는 “지난 학기에 기업체 수십 곳에 지원했지만 안 돼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졸업을 유예하거나 졸업하고 취업준비에 몰두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취업이 어려우니까 부모님도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갑갑한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강모씨(33)는 3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이다.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05년 졸업한 그는 2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접었다. 남들처럼 취업이라도 해볼 생각에 몇몇 기업에 입사원서를 넣어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뒤 다시 공무원 시험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현재 한 구립도서관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올해도 ‘공시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7·9급 공무원 시험은 매번 수백대 일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강씨는 “안정적인 직업이 갖고 싶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해 두해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남들이 말하는 ‘공시족 폐인’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100만’ ‘등록금 1000만원’ 시대. 치솟은 교육비와 실업률로부터 이중으로 압박받는 청년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우울한 세태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에 이어 ‘청년 실신(대학 졸업후 실업자가 되거나 빌린 등록금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집에서 취업 원서접수에 매진하고 있음을 표현한 ‘홈퍼니(홈·Home과 컴퍼니·Company의 결합)’와 취업이 대학생들의 목을 죈다는 ‘목찌’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 와중에 청년실업(15~29세) 수치는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악화일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7%대를 기록하던 청년실업률은 지난 1월 9.3%로 높아졌다. 카드대란을 겪은 2004년 2월 이래 6년 만에 최고치다.

정부는 ‘행정인턴’의 한시적 고용기간이 끝난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했지만 취업준비생들은 “단기처방의 한계가 나타난 구조적 문제”라고 답한다.

3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씨(29)는 “정부가 젊은이를 위한 근본적인 일자리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청년인턴제로 장난질만 친 것 같다”며 “결국 올해도 취업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데 이는 정부의 책임회피이자 직무유기 아닌가”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경제사회국장은 “일할 의지가 있는, 가장 생산력과 창의력이 뛰어난 청년층이 일자리가 없어 배제되는 현실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청년들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청년고용할당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등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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