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 부조리 고발 세상 뒤흔든 ‘마지막 인터뷰’

2015.12.30 22:59 입력 2015.12.31 00:26 수정
홍재원 기자

경향신문 ‘올해의 인물’ 고 성완종

“내가 희생이 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내 목숨으로 대처를 하려고요.”

‘살아있는 권력’ 부조리 고발 세상 뒤흔든 ‘마지막 인터뷰’

성완종(1951~2015). 초등학교 5학년 때 충남 서산에서 홀로 상경해 갖은 고생 끝에 건설회사 경남기업을 일군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그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잡힌 4월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북한산의 때죽나무 밑에서 발견된 65세 기업가의 주머니에선 박근혜 정부의 ‘살아 있는 권력’ 8인의 이름과 돈 액수가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허태열 7억, 유정복 3억, 홍문종 2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달러(2006년 9월26일), 이완구, 이병기.’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3인과 친박 실세들이었다.

‘살아있는 권력’ 부조리 고발 세상 뒤흔든 ‘마지막 인터뷰’

“할 말이 좀 있어요. 내가 많이 억울해요.” 성 전 회장은 죽기 전날 밤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새벽 산행 전 “녹음을 하라”며 최후의 인터뷰를 했다. 그는 검찰이 기소한 해외 자원개발 비리에 대해 ‘구명운동’을 다닌 일을 부인하지 않았다. 48분간 이어진 그의 육성에는 한국 사회 권력층의 부조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경향신문 4월10일자 1면에 허태열·김기춘 전 실장을 필두로 ‘성완종 리스트’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검찰은 하루 동안 숨겨왔던 메모를 뒤늦게 공개했다. 노(老)기업인은 인터뷰에서 ‘홍문종 대선자금’ ‘홍준표 경선자금’을 고발했다. 이완구 총리를 향해서는 “사정한다고 소리 지르고 있는데 사실 사정대상 1호”라고 직격했다. 그에겐 “선거자금 3000만원을 줬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출범시켰다. 놀란 집권여당에선 “경향신문을 압수수색하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 현직 총리는 열흘 만에 사퇴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믿고 쓴 돈이었을 거예요.” 돈 준 정황과 액수가 담긴 리스트와 인터뷰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거명된 실세들은 전부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검찰은 81일 만에 이완구·홍준표 두 사람만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 친박 실세들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이라고 손을 들었다. ‘친박 무죄·비박 유죄’라는 말이 나왔다. 홍준표 지사는 “성완종 메모에서 내 것만 사실이냐”고 조롱했다.

“이런 기업인이 나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맑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신문에 꼭 써 주세요.” 목숨을 끊으며 세상에 던져진 성완종의 말은 다시 뚜껑이 닫혔다. 그리고 대한민국엔 여전히 부정부패와 검은돈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은 단죄하지 못한 201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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