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날']8월28일 박정희 '배신'한 김형욱의 무죄

2016.08.28 15:37 입력 2016.08.28 16:15 수정

[기타뉴스][오래전 '이날']8월28일 박정희 '배신'한 김형욱의 무죄

“문세광 사건과 인혁당 사건은 정부가 조작한 것이다.” 검찰은 1982년 2월 <권력과 음모>(한국판명 ‘김형욱 회고록’)에 나오는 이 부분 등을 두고 ‘반국가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비리를 폭로한 김형욱은 1979년 파리에서 실종됐고, 이 법을 만들라고 지시한 박정희도 그해 피살된 뒤 이뤄진 기소입니다. 망명자 신분이라 김형욱 수사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가 늦춰진 듯합니다.

김형욱은 1977년 ‘박동선 사건’을 두고 열린 미국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를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박정희는 미국으로 망명한 최측근 김형욱에 격노했죠. 상소금지, 재산몰수, 궐석재판에다 외국 도피자·거주자 처벌 등 초법적 내용을 담은 ‘특별조치법’ 제정 지시도 김형욱을 겨낭한 겁니다. 서울지법은 기소 한달 뒤 궐석 재판을 열어 300억원대의 김형욱 재산을 몰수했죠. 부인 신영순이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90년대 초 헌재로부터 특별조치법 위헌 결정을 받아냅니다. 검찰은 반공법 위반으로 변경, 항소합니다. 정부의 문세광 사건 조작 내용은 곧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게 검찰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은 1996년 8월 “(김형욱이) 실종 전까지 출간을 막으려 했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합니다.

김형욱 사건은 미스터리였죠. 국정원 과거사 진상위가 조사에 들어가 2005년 5월 26일 중간 발표를 합니다. 다음은 과거사위 발표에 대한 5월27일자 경향신문 사설입니다. 당시 연합뉴스를 보시면 자세한 발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형욱 사건 중간 발표 바로가기)

[사설] 국가폭력, 김형욱사건 그리고 진실

국정원의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가 어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에 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망명, 반 박정희 활동, 살해 지시, 제3국인 살인청부, 파리 샹젤리제 거리, 소련제 소음 권총, 그리고 낙엽더미에 덮인 시체. 발표 내용은 한 편의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박정희정권 시대를 영화와 비교할 수는 없다.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표현할 뿐이지만, 절대권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놓고야 말기 때문이다. 박정희정권은 충성스러운 부하 한 명의 배신을 복수하기 위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박전대통령은 김전부장의 입을 막기 위해 회유하고 매수했으며 결국 중앙정보부가 마피아 조직처럼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해야 했다. 그것은 ‘사형’(私刑)이었다. 박정권이 아무리 국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해도 아무런 공적 권위없이 행해진 이 살인행위는 사사로운 복수극일 뿐이다. 국가가 사유화되고, 국가기관이 폭력의 도구로 변질될 때 그들은 이렇게 상상 그 이상의 것을 한다. 우리는 그런 시절을 지내왔다. 독재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는 그가 한 때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해도 소련제 소음총 몇 발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질 각오를 해야 했던 그 시절을.

그러나 이 사건이 그저 흘러간 시대의 우화는 아니다. 그 사건은 26년이나 묻혀 있었다. 민주주의 진전을 말하고는 하지만, 이제서야 우리는 낙엽더미를 훑으며 진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진실을 알기 전에는 섣불리 과거를 미화해서는 안된다. 과거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국민이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헤쳐나왔는지 배우지 못하고서 오늘의 우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다. 과거사 규명은 역사를 정리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역사의 전진을 위한 것이지 과거회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폭력’을 이제야 규명하다니, 우리는 역사 앞에서 너무 게으르고 무책임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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