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때에 한 시민단체에서 분단체제와 관련해 특이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 중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겨레하나·이사장 조성우) 산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가 그곳이다. 이들은 종북을 넘어 ‘혐북’(嫌北)이라는 특이하고도 새로운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이는 현재 한반도 상황을 설명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평화연구센터 강호제 소장을 만났다.
■“지금은 폄훼를 넘어 조롱의 대상”
겨레하나 부설 연구소인 평화연구센터는 3명의 상임연구위원과 2명의 객원연구위원이 있다. 이들은 ‘분단과 혐북: 또하나의 적폐’(변학문 연구위원) ‘혐북 어떻게 만들어 작용하는가’(강호제 소장) ‘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변화’(강호제 소장) ‘북·미 핵과 미사일 공방, 어디까지 왔나’(장창준 연구위원)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언’(센터) 등을 차례로 발표한다. 올 3월 출범한 평화연구센터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강 소장은 “강연 위주의 통일교육과 다른 차원의 평화·통일교육을 해보자는 의도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혐북 의식은 북한 정보를 독점한 정부와 이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이 아닐까. 새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유화적으로 전개되면 국민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까. 결국 혐북은 위정자들의 ‘정략적’ 소산이지 일반 국민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런 기자의 견해에 대해 그는 “양쪽(위정자와 일반국민) 다 책임이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평화연구센터가 주목하는 것은 지식인 집단이다. 강 소장은 “지식인 중에는 종북논리를 만들고 혐북을 조장하기도 한다”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짚자는 것이 이번 기획의 의도”라고 말했다.
굳이 지식인뿐이겠나. 종북을 넘어 혐북을 조장한 세력에는 보수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언론도 동참했다. 진보정당에 북한 김정은 체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으면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사상검증에 나선 것도 진보언론이다.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까지 종북몰이에 가세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종북을 넘어 혐북 단계에 이르면서 북한에 대한 무지와 몽매가 초래됐다는 것이 이 평화연구센터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무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강 소장은 특히 과학기술분야에서 북한에 대한 무지가 심각하게 만연돼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보면 확연히 우리보다 앞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 미국이나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나 SLBM이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인공위성 발사체만 하더라도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인공위성은 정밀도 10 마이너스 7승 정도의 정밀성을 요구한다. 그 정도 정밀성을 갖춘 기계를 제작할 기술이라면 일반적인 자동제어 기계를 다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의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연구하지 않는다. 단지 결과만 보고 놀랄 뿐이다.”
■진보언론, 진보정치인까지 종북몰이
강 소장은 특히 SLBM 기술은 세계적으로 5개 나라밖에 없는 아주 고도의 기술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종북에 빠지든 혐북에 빠지든 비이성적으로 북을 보다 보니 북맹에 빠졌다”면서 “그래서 북한 얘기만 나오면 합리적 추론을 못하고, 결국 국제사회에서 소외된다”고 질타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과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 등 이른바 ‘4월 위기설’에도 정작 주인공인 한국은 국제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가 지난 9일 ‘혐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주제 발표에서 “중국과 미국 정상이 북한 관련 정책을 우리를 배제한 채 논의하는데 이것 또한 매우 위험하고 주제넘는 짓”이라고 우려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날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행위는 결단코 한국 동의 없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대북사업 중단, 관련 시민단체 황폐화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겨레하나)는 민족의 공영과 통일을 위해 남북한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동포 간 편견과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2004년 2월 출범한 민간단체다. 전국적 조직을 갖춘 겨레하나에는 진보적 활동가·학자·변호사·전직 의원뿐 아니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도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겨레하나는 북한에 어린이를 위한 영양빵공장과 국수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못자리용 비닐, 교과서 종이 지원사업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과 접촉을 중단시킨 5·24조치로 모든 대북 지원사업이 중단됐다. 정부의 북한 접촉 중단조치 이후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등 북한 관련 사업만 중단된 것이 아니다. 북한 관련 시민단체도 황폐화됐다. 그러다보니 10년이 지난 지금 북한 관련 학과도 1개 대학에만 남았고, 기업의 북한 관련 연구소나 연구부서도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국책 연구소가 북한 관련 연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강 소장은 “북한문제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채 100명이 안 된다”면서 “연구자들도 여건이 안돼 근 10년 정도 북한연구에 공백기가 됐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긴 한숨을 쉬었다.
강 소장은 1973년 생으로 과학고(경남과학고)를 다니며 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 전국 2등, 수학올림피아드에서 동상을 받은 촉망받던 과학도였다. 대학도 물리학과(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는 어떤 통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 ‘평화통일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전공을 북한과학사로 바꿨다. 그의 석·박사(서울대) 논문 수준도 높았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북한현대연구 논문상, 박사학위 논문은 북한연구학회 신진학자 학술상을 받았다.
미래가 확실히 보장된 과학도에서 의욕이 넘치는 북한학자로 변신한 강 소장은 그러나 지금, 학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계비를 얻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배운 북한학은 돈이 안 된다”면서 “고등학교 때 2년간 배운 물리로 먹고 산다”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강 소장의 지금 모습은 우울하다 못해 참담한 우리 통일정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웅변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