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존폐 공론화

‘태아 대 여성’ 이분법 지양…법에서 현실 쪽으로 한 발 가까이

2017.11.26 22:31 입력 2017.11.26 23:12 수정

청와대 “새로운 균형점 필요”…‘개정’ 공론화에 영향 줄 듯

불법시술 등 “여성 건강권 침해”…남성·국가 역할도 강조

청소년 피임교육·비혼모 지원·입양 등 사회적 안전망 고려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에 내놓은 답변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에 명시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현행법을 손봐야 한다는 데에는 사실상 공감을 표한 것이다. 청와대의 입장 발표는 향후 낙태죄 개정 공론화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이날 홈페이지에 게시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답변 영상은 ‘태아 대(對) 여성’이라는 낙태 논쟁의 전통적 이분법을 지양하자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문제가 종교계와 여성계 사이의 첨예한 가치 논쟁의 블랙홀로 빨려드는 순간 실질적인 논의를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 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라는 종교계의 논리를 인정하는가 하면, 부정적 어감의 ‘낙태’보다는 모자보건법에 쓰이는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도 했다.

앞서 청와대는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와 함께 세 차례 회의를 열고 낙태 실태와 법 적용 현황을 파악했다. 최근 조사인 2010년 기준 16만9000여건의 총 낙태 건수 가운데 1만800여건을 제외한 나머지 94%는 범법자가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기소된 경우는 10여건에 불과했고, 실제로 처벌된 경우는 더 적었다.

지금의 법은 대다수 낙태 관련자들을 범법자로 만들면서도 처벌은 하지 않는 실효성이 없는 법의 성격이 강한 셈이다. 그럼에도 처벌 규정을 담은 법의 존재는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청와대는 파악했다.

조 수석은 임신중절 음성화, 불법시술 양산,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을 부작용으로 언급했다. 또 현행법이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묻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조 수석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조 수석은 낙태가 절실하지만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일상의 사례들을 예시하며 “다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인식의 토대 위에 조 수석은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임신중절 관련 언급을 인용했다. 낙태에 반대하는 가톨릭 수장의 발언을 인용해 조심스럽게 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다만 조 수석은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 이런 식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형태로 올라와 청와대가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 답변하면서 사회적 논의는 이미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헌법재판소에 다시 올라온 낙태죄 위헌법률심판 사건이 좋은 공론의 장이 될 것이고,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정부는 사법부와 입법부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청소년 피임교육 체계화,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구체화, 국내 입양문화 활성화 등 측면 지원을 할 방침을 밝혔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법 개정 차원의 문제를 넘어 ‘출산이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사회’를 위한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조 수석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은 물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비혼이든 경제적 취약층이든 모든 부모에게 출산이 기쁨이 되고 아이에게 축복이 되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