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와 산업 발전의 ‘아이러니한 공존’ ‘꽃의 마을’ 최고 등급 받은 알프스의 공업 도시

2019.04.05 16:41 입력 2019.04.05 16:42 수정
곽원철

곽원철의 ‘알프스 베베 레나’

스테인리스강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공장도 있는 ‘우긴’은 도무지 공업도시처럼 보이지 않는다. 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이 도시는 환경보호와 산업발전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알프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긴시 홈페이지

스테인리스강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공장도 있는 ‘우긴’은 도무지 공업도시처럼 보이지 않는다. 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이 도시는 환경보호와 산업발전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알프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긴시 홈페이지

레나 가족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드라이브 삼아 다녀오는 인근의 마을 중에 샤모니 몽블랑이 있다. 알프스산맥의 주봉인 몽블랑 기슭의 마을로서,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 개최지이자 동계스포츠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샤모니까지 차로 두 시간 남짓 거리의 길은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엽서나 달력에서 볼 듯한 그림처럼 예쁜 마을들로 채워져 있다. 깨끗한 공기와 함께 계곡 사이로 에메랄드빛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틈날 때마다 오가다 보니 조금씩 궁금증이 쌓이기 시작했다. 예쁜 마을들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이어지는 사이사이로, 의외로 크고 작은 공업단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채게 된 것이다. 그것도 경공업단지가 아니라, 주로 알루미늄이나 특수금속, 스테인리스강 등을 생산·가공하는 금속공업단지와 공장들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으로는 보통 공해 산업으로 여겨질 법한 시설들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청정지역, 그것도 세계적인 자연관광지에서 언덕 하나 넘은 지척에 위치하고 있다니….

아름다운 청정지역, 샤모니
곳곳에 있는 금속 공업 단지
관광 산업·농목축업과 함께
‘프렌치 알프스’경제의 한 축

호기심이 발동해 이 지역의 산업에 대해 살짝 알아보았다. 프랑스의 행정구역명으로 사부아라고 불리는 프렌치 알프스 지역은, 알고 보면 전통적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금속공업 기술의 발상지 중 하나였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부터 알프스 지역에서는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 기술이 발달했다. 거대한 댐을 건설해 수몰지역이 발생하는 등의 환경 파괴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알프스에서는 굳이 물길을 막거나 하지 않고 계곡에 파이프와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전기를 풍부하게 생산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어로 ‘하얀 석탄(houille blanche)’이라고도 불리던 알프스식 수력발전 기술은 마침 19세기 중후반에 태동하기 시작한 2차 산업 혁명, 즉 중화학공업 및 전기 기술의 발전과 맞물렸다. 여기에 알프스 지역의 풍부한 광물자원을 더하여, 다량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알루미늄 제련을 비롯한 다양한 금속 기술과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50만명 정도인 사부아주 인구 중 2만명이 공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금속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관광산업 및 농업·목축업과 함께 금속공업도 프렌치 알프스 경제의 주된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다.

샤모니로 가는 길에 이웃 도시 알베르빌(대한민국이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메달과 금메달을 획득한 기억이 생생한 199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우긴(Ugine)’도 그러한 금속공업 중심지 중 하나이다. 인구 7000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 주민 중 1700명이 금속공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그중에는 스테인리스강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공장도 있고, 티타늄과 지르코늄 등 고난도의 공정 기술을 요하는 초고부가가치의 특수금속을 독보적으로 생산하는 공장들도 있다. 생산 제품의 대부분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가구당 적어도 한 명 이상은 금속공장에 다니고 다른 상업 활동들도 거의 이와 관련되어 있을 터이므로 실질적으로 주민 전체가 같은 업종에 종사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꽃의 마을’우긴의 주요 기업
환경 경영 보고서 자체 발간
비용·경쟁력 부담에도 감수

하지만 지나는 길에 보이는 우긴은 도무지 공업도시 같지 않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이 지면을 통해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꽃의 마을(Ville Fleuris)’ 표식이 눈에 띈다. 꽃송이 3개. 최고 등급인 4개를 받는 마을들은 대부분 관광지인 점을 고려하면, 프랑스 내에서도 거의 최고 수준으로 꽃, 녹지와 화단 등 환경이 잘 가꿔져 있다는 의미다. 100년 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공장 입구의 파사드는 잘 가꾼 자연 리조트나 관광지를 방불케 한다. 하늘은 청명하고, 새들은 지저귀며 날아다닌다. 도무지 먼지라고는 없다. 마을 한가운데에 놓인 작고 예쁜 다리 어귀에서 잠시 차를 멈춰 내려다보면, 얼음처럼 차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가슴을 펴고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본다. 깨끗한 공기가 허파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정신이 맑아진다.

이 풍경이 신기해 이 마을 주요 기업들의 환경 경영 관련 보고서 등을 뒤져 읽어 보았다. 과연 회사의 규모들에 비해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을 폐기물 처리 및 재처리, 오염 가스 배출 억제 시설과 장치를 갖추고 유지하는 데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약 등에 기초한 온실가스 배출 기준에 관한 규정까지 자체적으로 준수하여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2011년부터 3년간 1000t 이상의 이산화탄소 배출량(CO2 equivalent)을 줄였으나,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판단하에 이후로는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효율 부문에 집중, 2015년 에너지 경영체제인 ISO 50001 인증을 받았다는 등의 홍보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테마파크나 공원의 입구가 아닐까 싶은, 알프스의 한 금속공장 정문. 위키피디아

테마파크나 공원의 입구가 아닐까 싶은, 알프스의 한 금속공장 정문. 위키피디아

이곳뿐 아니라 알프스 곳곳에서 활발히 생산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금속공업단지들을 보면, 산업 발달이 반드시 환경에 해가 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이 개발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만든 기술들을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을 하시는 분들께는 불편한 얘기가 될 수도 있으나, 환경 보호와 산업 발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프스의 공업단지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알프스의 공장과 기업들이 공짜로 친환경적인 생산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한 노하우는 물론이거니와, 현재도 지속적으로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당연히 원가 경쟁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짐을 지고 간다.

앞서 얘기한, 우긴의 중소기업들이 들고 있는 친환경 정책들과 기술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금속 및 중화학 공업 기술을 갖춘 대한민국의 기업들도 이미 많이들 실행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들 외에 산업계 전반에 그러한 자세가 갖춰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가령 이전 정권부터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안에 대해 여전히 산업계가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은 실망스럽다. 다른 예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속속 참여하고 있는 RE100(기업이 필요한 전력의 100%를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자발적인 캠페인)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아직까지 미미한 것도 안타깝다(여기에는 독점적인 국내 전력 공급 시장의 구조나 제도의 한계 등이 있어 기업 탓만을 할 수는 없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듯,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서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 결코 뒤처진 나라가 아니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서유럽 4개국(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외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보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수백년 앞서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들과 나란히 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세상물정 모르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배울 만큼 배운 유럽인들은 이를 알고 대한민국을 자신들과 같은 급으로(one of us) 인정한다(혹시 아직도 이를 잘 모르는 유럽인을 마주치게 된다면 못 배워서 그런 거라고 긍휼히 여겨주거나 점잖게 깨우쳐주시면 된다).

하지만 이는 곧, 우리가 이제는 그들과 동등한 규칙으로 경쟁할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시간, 즉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저부가가치 재화를 만들어 경쟁할 수도 없고, 환경에 끼치는 영향 따위는 무시한 채 수출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만 박차를 가할 수도 없다. 안전과 맞바꾼 비용 절감은 기업과 조직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반드시 돌아온다. 그동안 축적한 원천 기술과 노하우들을 후발주자들에게 노출시킬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열린 방식의 혁신(open innovation)을 추구해야만 하고,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산업 분야는 재빨리 후발주자들에게 넘겨줘 가면서 그들이 적어도 10년은 추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앞만 보며 달려서 쫓아오느라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선두주자들과 나란히 달리게 되었고, 그동안 신경을 쓸 겨를이 없던 것들을 돌아봐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이루어낸 소위 선진국의 기업들은,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대단해! 불과 수십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이렇게까지 우리를 쫓아오다니. 존경스럽고 경외할 만하군. 자 이제, 우리와 동등해졌으니, 같은 조건으로 경쟁해야지?” 그러면서 슬그머니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려 그들이 차고 있는 모래주머니를 툭툭 치며 보여준다. 사람 위주의 노동 환경, 환경 보호로 인한 고비용 구조 등이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할 준비를 갖춰 나가고 있는가?



▶필자 곽원철

[다른 삶]환경 보호와 산업 발전의 ‘아이러니한 공존’ ‘꽃의 마을’ 최고 등급 받은 알프스의 공업 도시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12년 남짓 직장 생활을 했다. 외국계 기업의 국내 사업과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 재벌 대기업 기획실과 스타트업의 프로젝트 팀장 등 다양한 업무를 오가다 2009년에 아무런 기약없이 훌쩍 프랑스로 건너갔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남프랑스의 산악도시 그르노블에서 아내와 늦둥이 어린 딸 레나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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