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수도권 지나친 팽창은 국가 생태계 위협…지속 가능 위해 분산 절실”

2021.11.18 20:51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절반의 한국’ 특별취재팀과 대담했다. 김 위원장은 “지속 가능한 수도권을 위해서라도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절반의 한국’ 특별취재팀과 대담했다. 김 위원장은 “지속 가능한 수도권을 위해서라도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새들은 안전한 보금자리가 없으면 번식하지 않아요. 생존 자체가 위협 받으면 다음 세대를 생각할 여유가 없죠. 한국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 가능한 수도권을 위해서라도 분산이 필요합니다.”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65)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향신문 창간 75주년 기획 ‘절반의 한국’(아래사진) 특별취재팀과 대담하면서 “균형발전은 수도권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6일부터 지난 11일까지 10회에 걸쳐 연재한 ‘절반의 한국’ 기획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균형 발전 실태를 일자리와 교육·의료·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짚고 대안을 모색했다.

‘절반의 한국’이 되기까지

유럽의 수도 인구, 전체 10% 안 돼
문제는 지역의 교육·일자리 해결
답은 나와 있지만 실행이 힘들어

배문규 기자(이하 배) = ‘절반의 한국’ 시리즈 어떻게 보셨나.

김사열 위원장(이하 김) = 상당히 공들인 기획이다. 국가균형발전 문제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다. 한국 사회의 모든 것이 얽혀 있는 만큼 해법도 복합적이어야 한다. 이번 기획이 여러 문제를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룬 점을 평가한다.

배 = 1회 ‘판교라는 남방한계선’(10월6일자)에서는 판교에 주목했다. 판교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며 가속화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IT 스타트업이 왜 판교로 몰리는지, 좋은 일자리가 왜 판교 이남으로 가지 않는지 짚었다. 수도권의 흡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김 = 중앙화와 집적화는 도시화의 한 특징이고 장점이 있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데 도시 역할이 컸던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친 수도권 집중으로 청년들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수도의 인구가 전체의 1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수도권 쏠림이 심한 프랑스도 파리 인구가 전체의 18%이다. 수도권의 인구가 절반이 넘는 것은 결코 건강한 상태라 볼 수 없다.

최민지 기자(이하 최) = 지적하신 대로 비수도권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이 핵심이다. 2회 ‘강릉 소녀들의 그 후’ 편(10월8일자)에서는 비수도권 고교 3학년 동창생 36명의 졸업 후 행적을 추적했다.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있었고 고향에 남은 이가 10명이 채 안 됐다.

김 = 좋은 교육과 일자리가 수도권에 많기 때문인데, 지역에 그 두 가지 모두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교육과 일자리가 지역에서 해결되면 된다. 사실 답은 알고 있지만,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최 = 교육과 일자리 외에 청년을 떠나게 하는 다른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 = 문화소외가 심각하다. 문화는 물리적 공간 같은 양적 요소뿐 아니라 문화를 생산해내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사람은 문화적 존재라 문화적 행위 속에 놓여 있기를 원하는데 비수도권 지역은 그런 게 결핍돼 있다. 비수도권 청년을 위한 문화커뮤니티를 조성해야 한다.

[절반의 한국]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수도권 지나친 팽창은 국가 생태계 위협…지속 가능 위해 분산 절실”

공공기관 이전, 정주여건 개선 먼저

공공기관 더불어 기업 지방 이전
대폭·지속적 혜택 없인 불가능
메가시티 ‘공존·협력’ 바탕 둬야
SOC 예타, 지역낙후도 반영키로

배 =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공공기관 2차 이전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이번 정부에서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없다며 차기 정권으로 공을 넘겼다. 균형위로서는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의 방향은 어떻게 돼야 하나.

김 = 다음 정부가 할 공공기관 2차 이전은 정주여건 개선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 1차 이전 공공기관 구성원들의 정주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구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이 이전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고등학교가 한 곳도 없다. 기관 이전이 지역의 성장동력이 되려면 임직원들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생활인프라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광역자치단체들도 산하기관을 분산 배치하는 자구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배 = 핵심은 민간기업의 지방 이전이다. 일자리를 주로 창출하는 것이 민간기업인데 이들이 비수도권에 가도록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김 = 혜택이 대폭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수도권에서 먼 곳일수록 법인세를 인하해주거나, 노동자 임금의 소득세를 낮춰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2세 경영인들이 비수도권으로 기업을 옮기면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있다. 일부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관행을 깨는 것이니 반감이 심하겠지만 이 정도 혜택이 없는 한 민간기업 이전은 어렵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상생형 지역 일자리다. 기업과 지역이 결합하는 ‘공존적 협력’ 사례로 어느 선진국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모델이다. 광주에 전기자동차인 ‘캐스퍼’, 강원 횡성에는 초소형 전기 화물차 ‘포트로’가 있다.

“메가시티, 지역 자발성 중요”

배 = 6회 ‘메트로가 필요해’편(10월21일자)에서는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구상을 대안으로 소개했다. 단절된 거점 도시들을 ‘모터(차량) 대신 메트로(통근 전철)’로 연결해 뭉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도 지난달 14일 균형발전정책의 핵심 전략으로 ‘초광역 협력 지원전략’을 내놨다. 일각선 메가시티 구상이 ‘토건형 개발주의’이자 또 다른 지역소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메가시티가 균형발전의 현실성 있는 대안이 되겠나.

김 =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의존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자강론’이 메가시티와 행정통합 구상의 추동력이 됐다.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면개정돼 자치분권 확대의 기반이 마련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의 소외 우려가 나오기도 하지만 메가시티 구상은 ‘현재진행형’이고 지역의 자발성이 중요하다. 서로 협력해 지혜를 짜내면 이런 문제는 얼마든 극복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하지 않아도 협력할 수 있는 ‘브리지 메가시티’(비인접지역 간 광역 협력) 모델도 있다. 메가시티는 경쟁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이다. ‘승자독식형’ 경쟁이 수도권 일극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부산이 경남 함양군의 고민을 해결해주면 문제는 풀린다. 서울 중심의 수직적 교통망이 수평적으로 보완된다면 공존과 협력도 쉬워질 것이다.

“정책에 지역인지감수성을”

최 =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조성과 관련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경제성의 잣대’만 들이댄다면 비수도권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김 = 예타의 평가 지표를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예타의 지표는 크게 ‘경제성’과 ‘정책 (평가)’ 두 가지다. 균형위는 ‘균형발전지표’를 넣어 지역에 기회를 주자고 주장한다. 환경파괴 등 우려 때문에 무조건 면제가 능사는 아니지만, 경제성만을 중시하면 비수도권이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예타에서 균형위의 균형발전지표를 활용해 지자체의 지역낙후도지수를 반영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최 = 예타 외에도 정부정책 전반에 성인지감수성처럼 ‘지역인지감수성’이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서울 송현동으로 결정된 이건희 미술관에 대해서도 지역에 대한 배려나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있다.

김 = 정부부처 중 공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한 곳이 많지 않다. 미술관을 서울에 둬야 할 이유는 많고 전문가들도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하지만 이건희 미술관이 김제, 안동 같은 비수도권 중소도시에 지어진다면 파급효과가 상당했을 것이다. 국토교통부 예산의 수도권 대 비수도권 배정비율을 보면 대체로 주택사업이 7 대 3, 교통망 사업이 9 대 1 정도라고 한다. 중앙부처 중에선 지방을 그나마 배려하는 곳인데도 이렇다. 다른 부처는 오죽하겠나.

일본은 총리가 지방창생본부장

균형위, 자문기구 지위로는 한계
실질적 집행기구로 만들어
국가 발전 컨트롤타워 역할 해야

배 = 균형위가 출범 18년을 맞았지만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한계 때문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균형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김 = 더 이상 대통령 자문기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일본은 한국보다 늦게 균형발전 문제에 뛰어들었지만 총리 직속으로 지방창생본부를 만들어 적극 대응하고 있다. 균형위원장 출신인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문기구인 균형위를 실질적 집행기구로 만드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균형위가 실권을 가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생명과학자이기도 한 김 위원장은 균형발전을 ‘생태계의 하모니’로 해석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안겨준 교훈은 ‘나만 잘되면 된다’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태평양 작은 섬의 주민들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팬데믹이 끝나니까요. 국가 생태계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수도권-비수도권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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