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어머니 넘은 민주화 투사”…시민들, 배은심 여사 추모 열기

2022.01.10 21:14 입력 2022.01.10 22:31 수정

이한열 열사 동문부터 20대 청년까지 분향소에 조문 행렬

<b>이한열기념관 찾은 발길</b>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 10일 마련된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한열기념관 찾은 발길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 10일 마련된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열사의 어머니는 영정 속에서도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 3층에 차려진 배은심 여사의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곳은 35년 전인 1987년 6월9일 고인의 아들 이한열 열사가 최루 탄을 맞은 연세대 정문에서 남쪽으로 약 630m 떨어진 자리다. 분향소와 연결된 위층 전시실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 피격 당시 입은 파란색 연세대 맨투맨 티셔츠와 해진 운동화가 황색 조명을 받으며 걸려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머리를 숙이고 흰 국화를 놓았다. 이한열 열사의 대학 3년 선배로 경기 고양시에서 온 문진수씨(59)는 국화를 놓은 뒤 큰절을 올렸다. 그는 배 여사를 “이 시대의 어머니”이자 “늘 저희 곁에 계시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배 여사님은 아들을 잃고 인생 전체가 헌신이셨죠. 한열이 곁으로 가시며 마음의 평안을 얻으셨겠죠.”

문씨의 말처럼 조문객들은 고인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를 넘어 한 명의 민주화 투사로 기억했다. 고인은 1988년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142일간 농성했고, 2020년에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서울 여의도에서 농성했다. 분향소에 붙여진 포스트잇에는 ‘한평생 어머니의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마다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한열 열사가 숨진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부의장이었던 신원철 서울시의원은 이날 분향소를 찾아 “장례식 때 어머니가 우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6월항쟁 때도 덕담을 해주셨는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니 마음이 먹먹하다”며 “저희들에겐 늘 강건한 분이다. 아들을 대신해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던지시고 저희를 격려해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젊은 조문객들도 분향소 곳곳에 보였다. 전주대 역사동아리 ‘역사랑’ 회장 문한솔씨(25)는 “인연은 없지만 역사 안에서 충분히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동아리 회원 백송이씨(21)도 “배 여사님도 학생들과 같이 투쟁하시다 돌아가셨다. 숙연해지고 감사하고 슬프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 9일 지병이 악화돼 향년 82세로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아들 이한열 열사를 잃은 뒤 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고인의 빈소는 조선대병원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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