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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고집하는 윤 당선인을 위한 영화 속 네가지 장면

2022.03.25 16:08 입력 2022.03.25 23:17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청와대라는 공간이 대통령을 지배한다? 혹시 이런 곳이라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며 기자회견에서 밝힌 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우리의 관념은 물적인 토대와 이를 둘러싼 구조적 관계망 안에서 구성된다. 30억원짜리 서초동 주상복합 아파트에 거주하고 서울대 출신 엘리트에 둘러싸인 윤 당선인의 세상에 대한 관점이 중산층 이하 시민들의 관점과 같을 수는 없을 게다. 그러니 경험상 청와대라는 권위적 공간에 들어가면 제왕적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나보다. 다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과 환경에 지배받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인간에겐 자유의지와 실천이성이 있다. 지배는 과한 표현이다. 윤 당선인은 이렇게도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엔 이전이 안 될 것이라고. 국민 과반이 동의하지 못하고 우려하는 사안에 대해 ‘결단’을 강조하던 그가 정작 청와대 입주와 함께 본인 의지가 꺾일 거라 확신하는 건 모순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대체 청와대는 그에게 어떤 공간이기에, 들어가는 순간 의식이 지배되고 강한 결단력에도 불구하고 다신 나올 수 없는 걸까. 그의 기자회견만으로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어 위의 두 조건을 만족하는 공간의 사례를 문화적 재현 안에서 찾아보려 했다. 이것이 윤 당선인이 그토록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고집하는 이유를 상상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컨저링> 해리스빌의 저택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가장 강렬하게 재현하는 건 역시 하우스 호러 장르다. 국내에서도 220만 이상 관객이 관람한 영화 <컨저링>은 미국 로드아일랜드 해리스빌에서 페론 가족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대가족인 페론 가족은 해리스빌의 농가로 이사 온 뒤 이런저런 이해할 수 없는 심령 현상을 경험한다. 그 집터는 과거 사탄숭배자 베스쉬바가 의식을 행하려다 실패해 자살했던 곳이었고, 결국 페론 가족 일원인 캐서린이 베스쉬바에 빙의되어 ‘의식을 지배’당하고,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도 집에서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만약 윤 당선인이 생각하는 청와대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죽어도 들어가기 싫다는 필사의 몸부림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가 계속해서 청와대라는 공간과 엮어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건 단순히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의 타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아닌 도성 한양에 실재했던 제왕들의 빙의에 대한 두려움 아니었을까. 복불복으로 누군 세종에게 빙의되고, 누군 선조에게 빙의되는 5년 주기의 귀신들림.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건, 왜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선 임금 왕(王) 자를 손바닥에 적어 오히려 귀신을 부르려 했을까. 아니면 내가 이미 왕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데
인간이 환경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의지·이성이 있는 한 과한 표현
당선인의 이유는 납득이 어렵다

영혼이 남아 있어 빙의되거나
정신이 황폐해지는 폐쇄된 곳
무소불위 권력 중독에 빠지는 곳
영화 속 사례들에 답이 있을까요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지옥의 묵시록> 정글 속 커츠 대령의 왕국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걸작 <지옥의 묵시록>에서 전쟁 영웅 커츠 대령은 탈영 후 정글 속 유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원주민에게 신 같은 존재로 군림한다. 미래의 참모총장으로 이야기될 정도로(윤 당선인은 실제로 검찰총장까지 됐다) 기대받던 엘리트 군인이었지만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조금씩 광기에 물들어 오히려 미군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초인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대의 참상 앞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황폐해진 인간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베트남은 그의 의식을 완전히 변화시켰으며, 그는 자신의 왕국을 떠날 수 없다. 그러니 주인공 윌러드 대위의 손에 죽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지옥의 묵시록>에 투영해본다면, 윤 당선인이 생각하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탐욕에 빠진 권력자가 아닌 당위 없는 전쟁 속에 피폐해진 광인에 가깝다. 윤 당선인은 폐쇄된 청와대에 갇혀 전쟁 같은 주 120시간 정무에 시달리는 대신 시민들과의 소통을 빌미로 맛집 투어하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는 길이라 여기는 걸까. 전쟁터를 벗어나 윌러드 대위에게 김치찌개를 손수 덜어주는 커츠 대령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훈훈해지긴 한다.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빠삐용> 악마의 섬과 드가

어쩌면 우리가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을 너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역설적인 표현일 수는 없을까.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윤 당선인 말에 ‘무슨 감옥도 아니고 납득이 잘 안 간다’고 비판했는데, 정말 감옥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어떨까. 가령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 빠삐용이 마지막으로 갇히는 악마의 섬 감옥에서 친구 드가는 농작물과 가축 덕에 그럭저럭 살 만한 환경을 꾸며 놓았다. 간수 표현을 빌리면 상어와 파도가 간수 역할을 하는 곳이라 특별한 난동만 부리지 않으면 섬 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니 나이 들고 수감 생활에 익숙해진 입장에서 그냥 만족을 가장하며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반평생 자유를 잃고 수감됐던 드가라면 스스로 노력해 바닷가재 요리도 해먹을 수 있는 악마의 섬 생활을 왕과 같은 것이라 자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해석이 과하다고 생각된다면, 12년 전 최저생계비 6300원으로 꾸민 하루 식단을 공개하며 ‘황제의 식사도 부럽지 않다’던 차명진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떠올려보자. 윤 당선인은 자유를 잃은 생활에 익숙해져 스스로 만족하는 가짜 왕의 삶을 격렬히 거부 중인 걸까. 이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린 빠삐용과도 같은 자유에의 몸부림. 물론 여전히 용산에 가야만 얻을 자유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과거 후보자 시절 ‘극빈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른다’고 하셨으니 그냥 못 배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자.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과 구속력을 재현하는 장르는 단연 영화, 그중에서도 불길한 농가를 배경으로 한 <컨저링>과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밖에 <지옥의 묵시록>, <빠삐용>,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도 그런 기제를 읽을 수 있다.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로터스 카지노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포세이돈의 아들 퍼시 잭슨의 모험을 다룬 영화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 퍼시 일행은 지하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한 진주를 찾으러 로터스 카지노에 갔다가 연꽃 과자의 맛과 유흥에 빠져 여정의 목적을 잊고 발이 묶인다. 윤 당선인의 상황에 대입하자면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들어가 권력의 맛을 본 뒤 청와대에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권력 중독의 상태에 빠지는 것. 사실 가장 상상력이 부족한 시나리오다. 말하자면 독재자가 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설마 청와대에 들어가면 독재를 할까봐 못 들어가겠다는 이야기를 할 리도 없거니와 그건 용산으로 자리를 옮긴대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퍼시 일행의 발을 실질적으로 묶은 것은 카지노와 유흥이 아닌 연꽃 과자다. 실은 소문난 미식가인 윤 당선인은 자신의 미각을 자극할 청와대의 요리에 빠지는 걸 경계하는 건 아닐까. 한 번이라도 맛을 보면 그동안 외치던 혼밥 없는 소통 정치를 파기할까봐 걱정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을 이토록 미루고 있는 이유도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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