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라에게 장애란…“짜릿한 스키를 타게 해준, 고마운 계기”

2022.03.29 22:55 입력 2022.04.26 19:56 수정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 최사라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국가대표 최사라를 지난 23일 만났다. 그는 가이드 러너 김유성씨와 호흡을 맞춰 알파인스키 시각장애 부문 대회전과 회전 종목에 출전해 4차례 레이스를 모두 완주했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스키를 만나게 해준 계기”라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국가대표 최사라를 지난 23일 만났다. 그는 가이드 러너 김유성씨와 호흡을 맞춰 알파인스키 시각장애 부문 대회전과 회전 종목에 출전해 4차례 레이스를 모두 완주했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스키를 만나게 해준 계기”라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2003년생.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했다. 알파인스키 대회전·회전 등 2개 종목에 출전해 각각 11위, 10위를 차지했다. 2014년 스키에 입문해 이듬해 꿈나무 대표로 뽑혔고 15세 때인 2018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다. 평창 패럴림픽에는 나이 제한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2019년 프랑스 바흐 세계대회에서 회전·대회전 1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올해 초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동메달 2개를 땄다. 베이징에서는 완주 목표 달성에 만족했지만, 4년 뒤 패럴림픽 메달을 당당히 바라보는 스키계의 ‘샛별’이다.

최사라(19)는 4년 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선수로 뛰지 못했다. 국가대표이긴 했는데 나이가 어렸다. 규정상 대회 출전이 가능한 나이보다 한 살 적었다. 대신 그는 대회 개회식 현장에서 패럴림픽 유망 선수 10명과 함께 대회기 입장 세리머니에 참여해 씩씩하게 행진했다. 그리고 알파인스키 공식 경기 전 시범 레이스에 나서 시원하게 슬로프를 달렸다. 그때부터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무대를 그리고 또 그렸다.

4년이 훌쩍 지나 올해 3월, 최사라는 중국 베이징 옌칭 국립알파인스키센터의 설원을 질주했다. 기다렸던 첫 패럴림픽 출전 꿈을 이뤘다. 시각장애 부문 여자 대회전 종목에서 1·2차 시기 합계 2분15초24로 15명 중 11위, 이어 열린 회전 종목은 합계 1분49초37로 10위. 최근 성적이 좋아 한국 선수단은 메달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시상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 나선 큰 무대에서 2개 종목, 4차례 레이스를 모두 완주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는 시력이 비장애인과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비장애인이 바늘구멍을 통해 사물을 들여다보는 정도의 시력만 있다. 홍채에도 문제가 있어 밝은 곳에서는 초점을 맞추기가 더 어렵다. 그래도 하얀 눈밭에서 누구보다 자신 있게, 거침 없이 달려나간다.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이 누구보다 크게 보이는 것 같다.

패럴림픽 출전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지난 23일 만났다. 2022학번 새내기 대학생이 된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진지하면서도 내내 밝았다. 스키 선수로, 국가대표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과 그가 꿈꾸는 미래 얘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화상(줌)으로 진행했다.

최사라 제공

최사라 제공

처음 출전한 베이징 패럴림픽서
연습한 만큼 실수 없이 마쳐 만족
긴장한 탓에 아쉬움은 좀 있지만
다음엔 시상대 맨 위 서는 게 꿈

- 패럴림픽 마치고 돌아온 지 열흘 남짓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하루 자가격리하고 난 뒤부터 온라인으로 개설된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올해 한국체육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 새내기 대학생이 된 소감은.

“자유롭다. 그래서 좋은 것 같다. 물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느낌도 든다.”

- 시간을 잠시 돌려 베이징으로 가보자. 첫 패럴림픽에 나서는 기분이 어땠나.

“대회전 1차 시기, 첫 레이스 때 연습했던 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큰 무대라는 부담감이 있었고, 관중도 꽤 많았다. 한편으로는 무척 설렜고 나 자신에게 기대도 컸다.”

- 첫 레이스 때 넘어질 뻔했는데.

“막판에 삐끗했다. 그래도 실수를 잘 커버하고 레이스를 마쳐 기뻤다. 레이스를 거듭할수록 긴장이 풀려 2~3번째는 즐기면서 타고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마지막 4번째(회전 2차 시기)다. 긴장됐지만 잘 마무리했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으니까.”

- 메달 기대주로 꼽혔는데, 결과에 아쉬움은 없나.

“1월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속도가 중요한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냈는데 이번에는 회전 기술을 겨루는 종목이라 다소 어려웠다. 연습한 만큼 실수 없이 마쳐 만족한다. 긴장 덜 했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은 조금 있다.”

- 4차례 레이스 모두 완주했다.

“대회 코스 연습 때 대회전은 완주할 수 있다고 봤지만 회전은 기문 간격이 좁아서 완주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습 때 기억을 잊지 않고 완주에 성공해 기분 좋았다.”

- 패럴림픽에 나가서 배운 점은.

“큰 대회는 코스가 어려워 완주만 해도 대단하다는 걸 알았다. 또 세계대회 때마다 느끼는데, 나보다 잘 타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올림픽을 경험하고나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붙은 게 제일 큰 수확이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가이드 러너 김유성은
앞길 밝혀주는 등대 같은 존재
난 겁이 많아 롤러코스터도 못 타
어쩌다 강심장 됐는지 모르겠다

시각장애 스키는 비장애인 ‘가이드 러너’와 함께한다. “여기서 라인 살짝 잡고! 빠르게! 잘했어!” 가이드가 앞서 내려가면서 무선 헤드셋으로 매 순간 코스 상황과 방향, 속도를 알려주면 선수가 그 신호에 따라가는 방식이다. 둘 사이가 일정 간격 이상 벌어지면 실격당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최사라는 이번 대회에서 청소년 대표 출신 가이드 김유성씨(26)와 호흡을 맞췄다. 둘은 레이스를 마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눴다. 최사라는 가이드 러너에 대해 “선수의 앞길을 훤히 밝혀주는 등대 같은 존재”라며 고마워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 쉽지 않은 종목인 알파인스키에 입문한 계기는.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수영을 했고, 골볼이나 자전거 타기도 해봤다. 그러다 열한 살 때인 2014년 겨울 장애인 스키캠프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코치님이 선수가 되는 게 어떻겠냐며 권유하셨다. 쌍둥이 동생 길라도 함께했다.”

- 스키를 처음 접했는데도 소질이 보였나보다.

“재미있었다. 스키를 타면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인데 스키를 타면 온종일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 위험한 운동이라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았나.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스키 타다가 다칠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래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까 지지해주셨다.”

- 어떻게 설득했나.

“스키 선수로 국가대표가 되고, 세계 최고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패럴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꿈도 말씀드렸다. 그때도, 지금도 자신 있다.”

- 수영을 먼저 배운 것이 스키에 도움이 됐나.

“기초 체력을 충실히 다지고 유연성을 기른 게 큰 보탬이 됐다. 그런데 스키는 수영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를 동반한 종목이라 스릴을 더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위험하지만 스피드로 0.01초를 겨루는 승부가 짜릿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렇게 스키를 좋아한 아이는 4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타고난 소질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땀흘리며 각고의 훈련을 쌓은 결과다. “눈이 안 보이니까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춥고 가파른 슬로프에 수없이 나뒹굴면서도 눈에 보이는 듯 장애물을 헤쳐나갈 때까지 훈련을 거듭했다. 그래서 지금 최사라는 국내 장애인 알파인스키계의 1인자로 우뚝 섰다.

- 차세대 에이스, ‘샛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별명이 딱히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샛별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별명이다.”

- 슬로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강심장’이라고도 한다.

“어쩌다 강심장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꼼꼼하고, 끈기 있게 최선을 다할 뿐인데…. 원래 롤러코스터도 무서워서 못 탄다. 겁이 많아서 주위에서 놀래키면 심장이 콩알만해진다. 하하.”

- 소심한 편이라고 하는데, 경기를 즐긴다고 할 수 있나.

“언제나 즐기면서 스키를 타자고 마음먹기는 하는데 전문 선수가 되고보니 즐기기보다는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대회 때는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 선수 입장에서, 자신의 단점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운동하면서 어떤 게 안 되는지 말을 해야 할 때 잘 꺼내지 못한다. 혼자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코치 선생님들이 어려울 때 말하라고 하시는데 그냥 지나가고는 한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 스키를 취미로 삼으면 더 즐거울 수 있을 텐데, 선수의 길을 꼭 가려는 이유는.

“세계 최고를 가리는 패럴림픽 무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무대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겠다는 꿈이 있어서다.”

19세 청년 국가대표의 꿈은 당차고 야무졌다. 목표에 집중하고 소신 있게 준비해 나가려는 마음가짐이 특별해 보였다. 그래도 그의 일상은 또래들과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과 수다떨기를 좋아하고 솔직하게 자기 취향과 의견을 말하는 젊은이였다.

특수체육교사 되는 꿈 생겼고
스쿠버다이빙 등에도 도전할 터
무엇보다 스키 실력 향상이 숙제
체력도 키우고 할 일이 많다

- 스키 선수를 안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나.

“평범한 학생으로 지냈을 것이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놀고, 취미로 운동도 하는.”

- 어릴 땐 장차 어떤 일을 하고 싶었나.

“꽤 많았다. 간호사나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고, 제빵사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직업이든 그 분야를 열심히 배워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 스키 선수가 되고나서 장래 희망이 바뀌었나.

“선수로 최선을 다한 뒤 장애인에게 스포츠를 가르치는 특수체육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시각장애인 스포츠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나에게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팀을 꾸려서 직접 코칭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 훈련이 없는 여가 시간에는 주로 무얼 하며 보내나.

“가족여행 가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다. 집에서는 유튜브를 잘 본다. 아주 가까이서 봐야 한다. 동물 나오는 걸 좋아한다. 예능이나 드라마도 자주 본다. 요즘 예능은 <유퀴즈~>, 드라마는 <사내맞선>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 큰 대회를 마치고 쉴 시간이 주어졌는데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뭔가.

“친구들 만나 수다 떨고, 노래방에 가고 싶다. 음치이고 춤도 못 추는데 노래방은 좋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면 좋겠다.”

- 4년 뒤 패럴림픽은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나.

“1순위는 메달이 분명한데,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베이징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동선이 제한돼 외국 선수들을 못 만났다. 다음 대회 때는 선수촌에서 외국 선수들과 마음껏 대화하며 교류하고 싶다. 좀 더 자유롭게 올림픽을 즐길 수 있기 바란다.”

- 앞으로 4년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체력도 많이 키우고, 스키 실력도 향상시키는 게 숙제다. 할 일이 많다.”

- 스키 외에 이루고 싶은 일은.

“공부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많이 따고 싶고, 스쿠버다이빙같이 못해본 운동에도 새로 도전해보고 싶다.”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산에 오르는 걸까. 용기만 있다고 되는 일일까. 우문이지만 그의 답을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평탄한 길을 가도 되는데, 왜 굳이 추운 겨울날 눈 덮인 산 위에 올라가서 꼬불꼬불 미끄러지며 험하게 내려오는 길을 택했나. 그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어쩌다보니 시작했다”면서 “왜 택했나 싶은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목표 지점이 있어서, 힘들어도 어차피 가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모든 선수들이 그렇지 않냐”고도 했다.

이 대목에서 ‘최사라에게 장애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한동안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편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스키를 타게 해준, 고마운 계기”라고 했다. 장애가 없었다면 자신이 스키를 타고, 국가대표가 될 기회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에게 장애는 이런 것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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