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이젠 가슴 안 뛴다…지역주의 뛰어넘기는 후배들의 몫”

2022.04.05 23:16 입력 2022.04.05 23:17 수정

정계 떠나는 김영춘 전 장관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이제는 거대 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며 정계은퇴의 변을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이제는 거대 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며 정계은퇴의 변을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1962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4년 부활된 고려대 총학생회의 첫번째 회장을 지냈다. 1986년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상도동계’ 막내로 정치에 입문한 뒤 YS 비서와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서울 광진갑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2003년 개혁 성향의 다른 의원 4명과 함께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해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부산진갑에서 당선돼 3선 의원이 됐고,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2020년 21대 총선 낙선 후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지난해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낙선했다.

거대 담론보다 생활정치 시대 도래
내 영혼 바쳐서 도전할 것은 아니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60)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586 용퇴론’의 연장선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개인의 문제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부산 출생 586’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 대해 물어보자 “그의 가족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지 않으며 이에 분노하는 여론은 일정 부분 이유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가족 전체를 매도하는 상황으로 간 여론 심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터뷰하던 시점에 공교롭게도 ‘독수리 오형제’의 한 명인 김부겸 국무총리 정계 은퇴설이 흘러나왔다. 김 전 장관은 “제가 정치를 그만둔다고 하니 김 총리에게서 전화가 와 ‘자신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21대 총선 패배 때 상실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최근 부산지역 선거에서 잇달아 패한 아쉬움이 인터뷰 내내 묻어나왔다. 부산에서의 정치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표현했지만, 지역주의 정치에 맞서던 시절의 기개는 아직 살아 있었다.

- 갑자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건 작년 보궐선거(부산시장 선거)를 마치고부터다. 안 하려고 했던 선거를 억지로 후보를 내 선거를 치르는 마당이었다.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다. 그동안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까지 통과시켰고, 2020년 12월 지방자치법을 개정하면서 부·울·경 메가시티 문제를 사실 기획·연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지역이나 나라에 어떤 가치가 있는 선거인가를 늘 따졌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다.”

- 페이스북에 올린 정계 은퇴 글을 보면 거대담론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했다.

“정치에 입문할 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나 군정체제 청산, 민주주의 문제, 이런 큰 화두를 갖고 시작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 부동산을 포함해 먹고사는 생활의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그걸로 투표하거나 응징투표를 하는 세상이 됐다. 물론 그런 정치에 적응하고 잘할 수도 있겠지만 저를 흥분시키는 정치는 아니다. 제 영혼을 다 바쳐서 도전하는 정치는 아니라는 거다.”

2003년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5명이 국회 의원식당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춘·안영근·이우재·이부영·김부겸 전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3년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5명이 국회 의원식당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춘·안영근·이우재·이부영·김부겸 전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 586세대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대선 때 ‘586 용퇴론’이 제기됐다.

“대표주자는 아니고 제가 나이가 가장 많다. 형이다. 제가 그만두는 것을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를 오래한 한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면 좋겠다.”

- 586세대 중 생활정치를 잘하고 있는 사례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정치인이 있다. 1970년대생이긴 하지만 운동권 출신이다. 유치원 관련 법을 개정해 집중적으로 줄기차게 노력했지 않나. 이 문제야말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는데, 이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법안까지 내고 통과시킨 사례는 귀중한 생활정치 사례다.”

- 민주당이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6 대 4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이 선전했지만 다시 2016년 총선 때의 정치지형으로 되돌아왔다. 안타깝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앞장서서 노력했고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제가 귀향을 하지 않고 그냥 서울에서 편하게 정치를 했을 건데…. 이어달리기를 해야 된다는 마음이었다. 다시 후배들이 이어서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가주면 좋겠다. 시민들이 해결을 원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 말로만 아니라 몸으로 뛰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들의 마음도 돌려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 합동기자회견에서 김영춘 예비후보(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 합동기자회견에서 김영춘 예비후보(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팬덤 강해지며 ‘조용한 민주당’ 돼
논리적 비판 통해 당내 민주화해야

- 민주당이 곧 야당이 되는데, 당의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프트한 정치 영역에서 더 유능해야 된다. 예를 들면 부동산 문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해결하려고 덤벼들었을 때 실패했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이해하고 일부는 충족시켜주면서, 또 다른 방법으로 규제를 하고 이랬어야 한다. 이게 생활정치의 요체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 욕망과 전쟁을 하려고 했다. 그럼 이기지 못한다.”

- 친문 팬덤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친문 팬덤이라고 꼭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그런데 지나친 ‘우리 편’ 의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트라우마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문을 닫았을 때 상실감이 그 하나이다. 지금도 민주당 안에서는 잘 떠들지 않는다. 당 지도부에 대해서든, 대통령에 대해서든 비판의 목소리를 잘 높이지 않는 거다.”

- 다른 하나의 트라우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팬덤 현상이 굉장히 강해졌다. 두 가지 트라우마 때문에 ‘조용한 민주당’이 되어버렸다. 당에 대해 충언을 하면 팬덤이 융단폭격해버리고, 그분들은 다시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이제 정권까지 빼앗긴 이 시점이 정과 반의 합을 만들어낼 때다. 지나치게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비판은 곤란하지만 예의를 갖추고 논리적인 비판을 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조국에 분노한 건 일정 부분 타당
가족 전체 여론 심판엔 안타까움

- 조국 전 장관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제가 지금까지 조국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제대로 된 발언을 안 했다.”

- 예민한 문제였다.

“한편에서는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이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교수였고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을 지낸 인사라는 차원에서, 부모를 잘 만나 부당한 결과를 얻은 것 아니냐고 분노하는 여론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 가족을 일방적인 여론재판으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양비론적으로 이야기해봐야 좋은 일이 아니겠다 싶어서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물론 (조국 사태는) 있는 사실 그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양비론적이다.

“팬덤 현상과 당내 민주주의 문제도, 무조건 비판만 하는 것도 반드시 좋은 게 아니고,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게 아니다. 그 중간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 조국 사태 때 586의 내로남불이 문제가 됐다.

“개인으로 살아갈 때는 그게 흠이 안 되겠지만 공직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흠결이라도 남기고 비난받을 수 있는 일들은 스스로 삼가고 자제해야 된다.”

김부겸 총리, 총선 패배로 큰 상실감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전화해

- 공교롭게도 김부겸 총리가 정계 은퇴 뜻을 밝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서로 교감했나.

“늘 좀 비슷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생각의 궤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제가 정치를 그만둔다고 하니 전화가 와서 ‘자신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말하더라.”

두 정치인은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독수리 오형제’(이부영·이우재·안영근·김부겸·김영춘) 중 정치권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부산서 노무현 이어달리기 여기까지
진영 아우르는 중립지대 운동할 터

- 두 사람이 부산·대구에서 지역주의에 맞서 힘들게 정치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시민들의 생각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 안에서 정당 간 경쟁을 시켜야 발전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구를 위해서든, 부산을 위해서든 지도자급으로 키워서 정치를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 떨어졌다.”

- 김 총리의 경우 21대 총선에서 옆 지역구 출신 주호영 의원에게 진 것이 충격이었을 법하다.

“엄청난 상처와 좌절이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대구·경북(TK) 지역이 고생하던 시절에 김 총리가 국회 예결위에 자청해 들어가 TK 예산을 챙겼다. 그런데 지역구 선거에선 패했다. 상실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 김 전 장관도 같은 심정이었나.

“해수부 장관을 하면서 부산 해운항만 산업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20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직접 관련 없는 서병수 전 시장이 공천돼왔는데 패배했다. 그런 게 상처가 된다. ‘아, 노력해도 안 되는가’ 이런 한탄도 해보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산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저도 많이 떨어졌다.”

김 전 장관은 15대 총선 때 서울 광진갑에서 처음으로 떨어졌고, 부산에서만 네 번 낙선했다. 2012년·2020년 총선, 2014년 부산시장 선거(출마 후 후보단일화로 사퇴),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다. 3선 의원이었으니, 8전3승5패의 전력을 갖고 있다.

- 한나라당에 그대로 있었으면 편하게 정치를 하지 않았을까.

“탈당하기 전날 저의 정치적 스승인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상도동으로 저를 불러 두 시간 동안 말렸다. ‘한나라당, 민주당도 아닌 당을 만들어 나가면 무조건 떨어진다’고 하셨다.”

- 그래서 뭐라고 했나.

“YS 역시 젊었을 때 집권당에서 탈당해 그 다음 총선에서 떨어졌다. ‘제가 청년 YS의 제자입니다’라고 했다. 그때 한나라당이 도저히 혁신이 안 되니까, 호남에서도 이기고 영남에서도 이기는 그런 정당으로 정치개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니 가서 고생할끼다’ 하면서 보내주셨다.”

- ‘독수리 오형제’는 자주 만나나.

“바빠서 자주는 못 본다. 대선 전에 한 번 봤다.”

- 그때 탈당한 걸 후회해본 적은 없나.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다. 그냥 거기서 계속 싸웠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탈당하고, 그리고 부산에 내려가 고생도 하고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기보다 제 영혼의 명령, 양심의 명령대로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호의 후회도 없다.”

김 전 장관은 ‘추호의 후회’라는 표현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상하다며 ‘일말의 후회’로 표현을 바꿨다.

- 부산에는 언제 내려갔나.

“2011년에 가족이 다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20대 의원과 장관 시절에는 서울에 원룸을 하나 구했다. 지금 서울에는 머무를 데가 없다.”

- 내려갈 때 큰 각오를 했을 것 같다.

“부산에 가서 경쟁력이 있는 정치를 만들어야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겠구나 생각했다. 부산이 바뀌면 경남·울산이 바뀌고 그리고 경상도가 바뀌면 호남도 바뀔 거라 생각했다. 이런 목표를 갖고 덤벼들었는데 ‘절반의 성공’밖에 못 거뒀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다.”

- 젊은 세대의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밖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 보통 여당이든 야당이든 초선 의원들이 당내에서 개혁이나 혁신을 위해 앞장서는 역할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게 안 보이는 게 아쉽다. 여당이니까 잘 못한다고 하겠지만 과거에는 여당 안에서도 그런 쓴소리를 했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 혹은 노무현 트라우마가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자기검열이라든가 외부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그런 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돌파하고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것이 초·재선 정치인의 역할 아닌가.”

-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이념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젠더 갈등까지 불거졌다. 향후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이다. 적대적인 진영 싸움 속에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데 한계를 많이 느꼈다. 한편으로는 정치 바깥에서 이 문제를 풀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은 정치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적극적인 지지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어떤 규정을 당하는 자이기도 하다. 진영 싸움을 만류하고 적대적 갈등을 막도록 새로운 차원의 정치를 열어주는 중립지대가 많아져야겠다는 차원의 운동을 하고 싶다. 정치에 대해 그런 발언을 끊임없이 하는 사회의 목소리를 만들고 싶다.”

- 구체적 계획이 있나.

“인본사회연구소와 메가시티포럼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또 해수부 장관 경험을 살려 해양산업·해운·항만 관련 신재생에너지, 블록체인이나 AI(인공지능) 같은 미래 기술 영역에 도전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해보고 싶다.”

- 글을 쓸 생각은 없나.

“<바다의 발견>이라는 책을 2월에 출간했다. 이제 정치인이 아닌 작가 생활도 해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백팩을 메고 대중교통을 타겠다며 일어섰다. 인문학 운동가, 혹은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윤호우 논설위원

윤호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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