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감 2022

월급은 ‘절반’···지자체, 정규직화 꼼수로 ‘시간선택임기제’ 악용

2022.10.16 15:37 입력 2022.10.16 16:30 수정

1~2년마다 계약 갱신 시간선택 임기제

정규직 써야 할 상시 업무에 ‘적극 활용’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이후 2.3배 폭증

지난해 1월7일 한 환경미화원이 눈을 치우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지난해 1월7일 한 환경미화원이 눈을 치우고 있다. / 이준헌 기자

A씨(36)를 서럽게 만든 건 동료 직원보다 훨씬 얇은 월급봉투였다. 2016년 한 지방자치단체에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된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2인 1조로 무단투기 단속, 대형폐기물 스티커 부착 등 업무를 했다. 그러나 A씨의 급여는 동일한 업무를 하는 공무직 동료의 절반 수준이었다. 1~2년마다 돌아오는 재계약 기간에는 계약 연장이 안 될까봐 조마조마하며 채용공고를 알아보곤 했다.

2017년 새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하자 A씨도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A씨 같은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은 예외였다. 서러움이 더 깊어졌다.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심했어요. 보좌관이나 그래픽 전문가를 임기제로 뽑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상시 지속 업무를 임기제로 뽑는 건…임금 체계도 다르고, 노동자끼리 갈등도 생겨요.” 서러움을 견디다 못한 A씨는 결국 다시 시험을 쳐 다른 직렬 공무직에 합격해 일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정규직이 해야 할 상시·지속 업무에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을 마구잡이로 채용하는 ‘꼼수’를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기간제’인 이들을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연차에 따른 보상도 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따르는 부담을 피하는 것이다. 이는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태다. 그 결과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은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도입 전보다 2.3배 폭증했다.

정부가 정규직 쓰라고 한 업무들···현실은 ‘사실상 기간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연합노조는 전국 광역·기초지자체로부터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 현황을 받아 취합·분석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은 현직 공무원이 업무 시간을 단축하는 ‘전환’ 공무원, 처음부터 시간선택제로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한 ‘채용’ 공무원과 함께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한 종류다. 통상 1~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등 기간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안부는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을 “한시적인 사업 수행 또는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현직 공무원 업무 대체를 위해 일시적으로 채용되는 공무원”이라고 규정한다. 상시·지속 업무가 아니라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일들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 2017년 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2년 이상 지속되는 상시·지속 업무에는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

[단독]월급은 ‘절반’···지자체, 정규직화 꼼수로 ‘시간선택임기제’ 악용 [국감 2022]

용혜인 의원실과 노조의 분석 결과 상당수 지자체들이 상시·지속 업무를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에게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업무의 예시로 사무보조, 영양사, 전산보조, 고객관련업무종사자, 상담원, 경비원, 환경미화원, 연구원, 사서및기록물관리원, 운전원, 의료업무종사자 등을 들고 있는데, 이 업무들을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이 맡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경기 수원시는 체납세 징수 업무에 5명의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을 5년째 쓰고 있다. 경기도청은 불법행위단속요원이나 체납세 징수 같은 행정분야부터 의료업무(정신건강전문요원·예방접종관리요원·간호사·구강보건요원 등), 문자상담요원이나 아동학대예방종합대책요원까지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에게 맡기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아동보호전담요원, 사서, 하천 불법행위 단속 등 업무를 맡겼다. 충북 제천시는 치매안심센터 간호사, 속기사, 영양사 등을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이 하고 있다.

법에 규정된 책임자급 직원을 시간선택임기제로 두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청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를 모두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에게 맡기고 있다. 상시·지속성이 법에 규정돼 있는 업무인데도 임기제에게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들은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의 낮은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잦은데, 이 경우 이 자리는 공석으로 남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이 의결된 2017년 7월2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이 의결된 2017년 7월2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청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최근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가 채용되기 전까지 그 자리들이 공석이던 기간이 있었다”며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는 셈이라서 문제가 크다. 전문가들인 만큼 별도의 직급을 만들어서 높은 처우와 임기를 보장하면 어떨까 싶다”고 했다.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들이 2년 이상의 상시·지속업무를 맡고 있다는 정황은 계약기간에서도 드러난다. 용 의원실과 노조가 경기도 한 지자체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 274명의 계약기간을 분석해 보니 평균 2.34년으로 나타났다. 충북의 경우 7~8년부터 최대 10년째 일하고 있는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도 있었다.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발표 후 2.3배 ↑

정규직화를 피하기 위한 편법성 ‘꼼수’로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을 악용하면서 이들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용 의원실과 노조가 전국 광역·기초지자체 제출자료를 취합한 결과를 보면,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은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이전인 2016년 6671명에서 2022년 1만5356명으로 2.3배 늘었다. 증가 인원으로 보면 경기도가 2392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시가 1727명으로 뒤를 이었다. 증가 배율로 보면 제주시가 13.8배로 가장 높고 경북 11.3배, 전남 8.7배 순이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전체 지자체 공무원 현원 대비 시간선택임기제 비율은 2016년 2.2%에서 2019년 3.4%로 늘었다.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이 3% 이상인 지자체는 서울, 경기, 제주, 세종, 인천, 부산, 울산, 대전 등 8곳이었다. 서울시는 7.3%로 전국 평균의 2배가 넘었다.

지자체와 달리 중앙부처는 2016년~2021년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을 40~50명선으로 두는 등 제도 취지를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에 대한 행안부 규정 중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현직 공무원 업무 대체를 위해 일시적으로 채용되는 공무원’이라는 문구에 비춰 보면, 2020년 국가직 공무원 중 시간선택제 전환자는 1195명이었지만 시간선택임기제 공무원 채용은 49명뿐이었다. 같은 기간 지방직은 487명 전환에 1만1424명을 채용했다.

용 의원은 “시간선택임기제가 제도 취지와 전혀 달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정부 방침을 우회하는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공공부문이 앞장서 정부 방침을 어기는데 민간에 만연하는 쪼개기 계약 등 불법·편법이 시정될 리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에 종사하는 시간선택임기제 근로자는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맞춰 공무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