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는 절규, 후세들이 기억해야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

2023.04.02 21:20 입력 2023.04.02 23:31 수정

제주도가 ‘4·3 기록물’ 세계유산등재에 나선 이유

제주 4·3 희생자인 문순현씨가 당시 대구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면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 제주도 제공

제주 4·3 희생자인 문순현씨가 당시 대구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면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 제주도 제공

“아내에게, 아, 꽃 피는 봄철도 지나고 더운 여름철이 돌아왔네. (중략) 늙은 어머님과 형님들이며 조카며 모두 평안하였느냐. 그리고 고맙게도 보내준 금전과 소포를 잘 받았으니 안심하게나. 즉시 답장할 마음이 있어도 자유로이 엽서를 구하지 못하므로 지금까지 회답 못하였네. (중략) 늙은 어머님 생각과 어린애 생각이 가슴에 가득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 당시인 1948년 불법적인 절차로 진행된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문순현씨(당시 24세)가 옥살이 중 아내에게 보낸 엽서 내용의 일부다.

검열 속에서도 세 차례 엽서를 보내 안부를 전하던 문씨는 한국전쟁 직후 행방불명됐다. 1950년 7월 대구형무소 재소자들이 군에 끌려가 학살당할 때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씨뿐 아니라 군법회의로 형을 받고 이송된 4·3 관련 제주도민 100여명도 포함됐다. 문씨는 지난해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옥중 서신·희생자들 증언 등
문화재청, 이달 말 2건 선정
내년 상반기 유네스코에 신청

문씨 가족들이 간직해온 이 엽서는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자료에 포함됐다. 문씨의 딸인 혜형씨는 지난 2월 4·3기록물 등재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어머니는 이사 갈 때마다 궤 속 깊이 3장의 엽서를 챙기고 소중히 간직하셨다”면서 “아버지의 찢어지는 절규를 후세들이 기억한다면 끔찍한 4·3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은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제주도가 ‘4·3 75주년’을 맞아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픈 역사지만 제주뿐 아니라 전국이, 세계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기록유산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선정한다.

4·3기록물은 4·3 당시 행정부와 국회 기록, 군경 기록, 재판 기록, 미국 기록, 언론 기록과 4·3 이후 희생자 결정 기록, 도의회 희생자 조사 기록, 잔상규명과 희생자들의 증언 기록 등 모두 3만여건에 달한다.

제주도는 이 기록들을 추리고 분류해 지난 2월 말 문화재청 공모에 접수했다. 문화재청은 이달 말쯤 기록물 2건을 선정한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내년 상반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할 수 있다.

제주도와 4·3단체들은 “당시 기록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기 시점에서 냉전과 국가 폭력, 민간인 학살 관련 자료를 4·3이라는 한 사건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4·3기록물의 대표적인 자료를 보면, 당시 제주에서 이뤄진 두 차례 군사재판에서 형을 선고받은 2530명의 명단과 인적 사항이 기재된 명부인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1948~1949)가 있다. 이 자료는 당시 군사재판이 판결문과 재판 조서, 변호인 등 재판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불법적 재판이었음을 드러내는 근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군사재판으로 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육지 형무소에서 형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에 의해 학살됐다. 이들이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들은 모두 유품이 돼 이번 기록물 제출 자료에 포함됐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 심의·결정 요청서는 희생자로 결정된 1만3592명(2001~2005년)이 4·3 당시 어떻게 희생됐는지를 개별적으로 상세히 기록한 자료다.

2003년 제주시 하귀리에 세워진 위령비인 영모원도 이번 제출 자료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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