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색깔론’ 폄훼, 독재정권서도 없던 일”

2023.08.28 21:18 입력 2023.08.28 21:19 수정

“식민지 시기 이념은 수단…본질은 독립운동”

흉상 철거 추진 비판 봇물

시민들·학계, 정부 인식 비판
“공로 인정된 분에 왜 이러나”
“극우 유튜버나 할 만한 얘기”

정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이전을 검토하는 것을 두고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수준 낮은 색깔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가가 이미 공로를 인정한 독립운동가를 이제 와서 난데없이 ‘공산당 출신’이라고 갈라치고 깎아내리는 것은 지극히 편향되고 그릇된 역사인식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 반공 이념 과잉이 역사적 업적이 공인된 독립운동가마저 조악한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연구해온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28일 통화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해 북한 체제와 연결해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무모한 일”이라고 밝혔다. 반 교수는 “일반적으로 공산당 활동을 했다고 하면 공산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소련에서) 다른 나라로 가서 선전 활동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홍 장군의 경우를 따져보면 이와 다르다”고 했다.

반 교수는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1927년으로, 1868년생인 그가 60세쯤 은퇴 시기가 됐을 때”라며 “일본군을 피해 독립운동을 함께하던 부대원과 소련에 정착한 홍 장군은 은퇴 이후 연금을 받는 등 생계 유지를 위해 입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43년 홍 장군이 사망한 이후 해방과 정부 수립, 한국전쟁이 이어졌고 시간이 흐르며 현재 북한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잣대만 가지고 홍 장군을 싸잡아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의 공산당 가입 전력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본질을 흐리는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현대사 전공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식민지 시기에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독립을 위한 수단 정도로 여겼던 이들이 많다”면서 “본질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에 있다”고 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독립운동가 흉상을 둔 것은 육사의 뿌리를 일제강점기에 무장투쟁했던 광복군 등에서 찾자는 의미였다”면서 “홍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뿐더러 지청천 장군·이회영 선생·이범석 장군·김좌진 장군 등 나머지분들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시민·연구단체도 “역사 왜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독재정권에서도 홍 장군을 색깔론으로 폄훼했던 적은 없었다”면서 “극우 유튜버나 주장할 만한 얘기를 정부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인숙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법률팀장은 “정권 외에는 바뀐 게 없는데 이미 공로가 인정된 독립운동가를 두고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지금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인가, 조선총독부인가”라고 물었다.

시민들도 ‘흉상 이전’ 시도를 비판했다. 회사원 곽모씨는 “10여년 전 수능 한국사 과목에서 독립운동가를 고르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답이 ‘홍범도’였던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면서 “박정희가 남로당 출신이라고 해서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 정부의 역사 인식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제2의 일제침탈이 시작됐다” “남로당에 가입했던 박정희도 문제냐” “이념편향과 이념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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