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경향

‘대통령 거부권 제한법’ 가능한 걸까?

2024.06.16 06:00 입력 2024.06.16 09:21 수정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안 등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7건의 법률안 추가 상정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안 등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7건의 법률안 추가 상정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4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같은 날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 이 법안들은 자동 폐기됐어요. 국회가 끝나면서 법안을 다시 논의하거나 의결할 기회도 없어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간 거부권을 14번 행사했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중 거부권을 0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건을 행사한 것과 비교하면 많은 횟수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논란이 벌어졌어요. 본인을 포함한 대통령실의 연루 의혹을 규명하자는 ‘채 상병 특검법’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여러 의혹을 수사하는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윤 대통령의 잦고 광범위한 거부권 행사가 이어지자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는 등 손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연 거부권을 제한할 수 있는 건지, 만약 제한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경향신문이 따져봤습니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란?
대통령이 국회가 의결해 행정부로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공포를 거부하고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예요. 국회는 재의 요구를 받으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법률을 재의결할 수 있어요. 헌법 53조에 이 내용이 있어요.

거부권은 ‘무제한’이 아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어느 정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헌법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공무원으로서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원칙, 권력 분립의 원칙 등에 따라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건데요.

우선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했어요. 국가수반인 대통령도 마찬가지 의무를 집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7조를 보면 모든 공무원은 오로지 공익을 위해서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 대통령의 거부권도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이 본인과 가족 등의 이익과 관련된 내용의 법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헌법 제40조는 정부는 행정권, 국회는 입법권을, 사법부는 사법권을 독립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권력 분립 원칙’을 규정했어요. 이에 따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말은 예전부터 나왔어요. 거부권은 국회가 마구잡이로 법안을 만드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지만 정부가 거부권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대통령은 거부권을 최대한 소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와요.

거부권 행사 범위 법으로 제한하자?

그렇다면 거부권을 어떻게 제한해야 한다는 걸까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안의 범위를 제한하고, 국회가 거부권으로 돌려받은 법안을 논의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말이 나와요.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국회 의원과에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제한법을 제출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국회 의원과에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제한법을 제출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대통령 본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전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며 “윤 대통령은 사적 이해관계자인 본인과 김 여사 관련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에까지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헌법상 한계를 넘어서 거부권 권한 남용을 한 것”이라고 말했어요.

일부 전문가는 이렇듯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안의 범위에 제한을 두는 법안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익을 실현해야 하는 공무원인 대통령이 본인이나 가족과 관련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공정성·중립성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입법은 가능하다”고 말했어요.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어요. 거부권 행사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한 법률은 적절하지 않다는 거예요.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부권 행사 범위를 너무 좁혀두면 정부의 권한이 너무 약해져 국회와 정부 간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며 “물론 대통령이 본인과 관련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적이지만 명분 없는 거부권 행사가 계속 이어진다면 선거 등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거부권 행사 범위를 법률로 제한하기보다는 과도한 거부권 행사를 ‘유권자 심판’으로 견제하자는 거지요.

거부권 행사된 법안 국회 재논의 시간 보장해야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낸 ‘국회의 책임성과 국회 임기 만료 시 법률안 재의요구권의 문제’ 이슈페이퍼는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에 대해 국회가 다시 논의 및 재의결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방안을 제안했어요. 거부권이 행사된 뒤 국회가 재의결하고 정부가 공포하는 절차까지 완료할 수 있는 날짜를 국회가 운영되는 날짜 안으로 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정하면 21대 국회가 끝나기 직전 대통령이 돌려보낸 법안을 논의할 시간이 보장된다는 거죠.

이 방안을 제안한 김선화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법제사법팀장은 “입법권자인 국회도 법안을 의결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회도 그냥 의결만 하고서는 의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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