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남자들’

2017.07.09 15:12 입력 2017.07.09 20:55 수정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나의 주된 일상이 분노였다면, 요즘은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니, 두려움이 오히려 정상일지도 모른다. 박근혜씨가 물러났다고 해서, 사회가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남자들’

국민의당이 이유미씨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잠시 그녀와 ‘동일시’되었다. 대통령 후보 아들의 취업 특혜라는, 무서운 거짓을 단독행동이라고 믿을 국민이 있을까. 만일, 그 당의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후안무치도 지나치면 무서운 법이다. 지난 4일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뜬금없이’ 탁현민씨 문제를 맹렬히 거론했다.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여성주의 의식 검증은 당연하다. 문제는 어떻게, 누가 검증하느냐다. 그 방식이 ‘탁씨 문제’라면 난센스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인권의식 검증은 여가부 장관의 업무가 아니다. 여성인 윤종필 의원은 청문회에 나오기 전에, 자기 당 홍준표씨나 동료 의원들을 생각해야 한다. 윤 의원처럼 뻔뻔스럽고 주제 파악이 안된 정치인들 때문에, 정당한 탁씨 비판도 “정치 공세”라는 프레임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우리는 지도자 복이 없었다. 국민을 살해하고 집권한 대통령이거나 자기가 투표하고서 곧바로 ‘속았다.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민초들. 이것이 우리의 현대사였다. 대한민국이 언제 다시 ‘문재인’만 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가질 수 있을까. 행운을 넘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적폐’ 대신 ‘리버럴 마초’들이 돌아온 것일까. 현 정부 출범 이후 몇몇 인사(人事)가 젠더 문제로 실패했다(그들의 언어로는 ‘여자 문제’). 안경환(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김기정(전 청와대 안보실 2차장 내정자) 교수를 비롯, 탁현민씨는 하루도 화제가 안된 날이 없다. 이들 외에도, 보도는 안되었지만 “언젠가는 터질” 혹은 “과거가 있는” 고위 인사들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젠더는 계속 새 정부의 곤란이 될 것이다. 남성의 성차별·성폭력은 구조적 문제인 데다 국민(여성)들의 수준이 ‘장관이나 행정관’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성매매방지법은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그의 소신은 형법학자로서 전문성을 의심케 한다. 도박, 마약 중독, 성매매는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라는 이론이 있다. 당사자가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는 동의-강제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별과 계급이 교차하는 오래된 구조적 문제다. 야당의 ‘정치 공세’ 이전에, 여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현행 성매매방지법은 전체 성산업의 5%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는 최소한의 인권 침해 규제이지, 개인의 권리 침해와 무관하다. 경기도 여자기술학원, 군산 대명동·개복동, 부산 완월동, 서울 하월곡동·미아리, 그리고 ‘해방’ 후 주한미군에게 살해된 기지촌 성산업 종사 여성까지. ‘윤락행위방지법’ 이후, 인신매매나 채무로 잡혀와 감금된 채 화재로 사망한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40여년간 여성운동가들의 헌신으로 겨우 제정된 법이다. 오히려 성매매방지법은 더욱 정교하게 보완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탁씨 관련 글을 세 번 썼지만 한 번도 그의 사퇴나 경질을 주장한 적이 없다. 다른 비판자들은 해임을 요구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탁씨를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대로 그의 책은 과거사다(하긴, 과거사라면 청문회는 왜 하는가). 내 글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비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지, 문재인 정부와 무관하다. 그가 우연히 대통령 부부와 친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탁씨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위험한 인물이어서만은 아니다. 진짜 심각한 질문은 왜 한국 사회는 언제나 남성의 여성에 대한 비행을 성별 권력 관계가 아니라 여당과 야당의 갈등으로 만드는가이다. 이 논란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지, 남성과 남성의 갈등이 아니다. 이런 인식이 여성 억압을 삭제시키고 젠더를 독자적 정치가 아니라 남성 정치의 부산물로 사소화시킨다. 이 때문에 내가 남성 강간 문화를 비판하면, “자유한국당 프락치” “일개 행정관 문제로 새 정부에 재를 뿌린다”는 비난을 듣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이들은 진정 누구인가? 상식 이하의 인권 의식을 가진 남성들인가. 이를 비판하는 국민인가. 탁씨의 글은 성차별을 넘어서, 여성을 너무나 함부로 다루고 있어서 읽는 동안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청와대와 탁씨를 비판하는 글이 ‘주요 매체’에만 30개가 넘게 실렸다.

지난 7일에는 여러 여성단체가 “탁현민 아웃” 기자회견과 시위를 벌였고, 7542명의 시민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여론이 이와 같은데도 꿈쩍하지 않는 청와대. 시간이 지날수록 젠더 문제를 떠나 여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왕의 남자’라는 소설(팬픽)을 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니 팬덤’도 좋지만 다른 지지자들의 우려와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 개인의 인간적 매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 정부에 대한 지지가 MB와 박 정권에 질린 국민들의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의 ‘부작용’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네이션 빌딩’과 민주주의를 혼돈하지 말라.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