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 울리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2017.09.24 16:06 입력 2017.09.24 21:14 수정

천재에게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 필요했다면,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99%의 노력과 1%의 ‘입김’이 필요하다. 요컨대 누군가의 입김이 없다면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감사원이 공기업 35곳을 포함한 주요 공공기관 53곳을 대상으로 감사한 결과, 채용 부정 사례가 100여건 적발됐다. 대한석탄공사에서는 권혁수 사장의 조카가, 금융감독원에서는 이 아무개 총무국장의 지인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인턴이 채용됐다. 과정이 공정했다면 절대 합격하지 못했을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강원랜드의 신입사원 518명의 95%가 넘는 493명이 부정행위로 채용된 사건은 믿기 힘들 만큼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NGO 발언대]공시족 울리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무엇보다 대다수의 지역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공공기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그 충격은 이중고로 찾아온다. 그들은 이미 지역 격차로 인해 불공정한 출발선 위에 서 있다.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이유는 사기업을 대상으로 취업을 준비하기에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 100대 대기업 본사 중 86곳이 수도권에 위치한다. 지역 청년이 서울로 유출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둘, 스펙을 쌓기 위해 ‘스펙 상경’을 해야 한다. 기자단, 서포터스, 인턴 등에 지원하려면 언제나 수도권 내 거주라는 지원 자격이 따라붙는다. 오고 가는 교통비와 시간을 감당하거나 보증금 1000만원과 월세 50만원을 마련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셋, 취업정보에 대한 접근성마저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에 비해 부족하다.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넘어야 할 산들이 참 많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여기까지는 서울에 살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우겨우 서울에 도착해 면접장에서 누구의 자제니 조카니 사돈의 팔촌이니 하는 지원자와 나란히 앉아 느껴야 하는 박탈감까지 내 탓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공시생 열풍은 적잖은 무게로 다가온다. 믿기 어렵겠지만 2016년도 공무원 선발 인원은 4120명, 응시자는 역대 최대치인 22만2650명으로 해당 년도 대학 졸업자의 절반 수준에 해당했다. 응시 동기는 1순위가 ‘직업의 안정성’, 2순위 ‘좋은 근무환경’, 3순위 ‘공정한 기회’, 마지막으로 ‘유리한 보수’ 순으로 나타났다. 유리한 보수보다 공정한 기회를 선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다면 수능과 같은 줄 세우기식 계량적 평가가 학벌과 연줄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사회사 속에서 9.4%라는 청년 실업률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함축적이다. 이는 청년의 나태와 게으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치다. 이들을 계속해서 움츠러들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을 만드는 일부 기성세대에게 도전의식이 없다는 비난은 듣고 싶지 않다. 일자리 없는 지역 사회에서 지역 청년이 기댈 곳은 어디이며, 연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흙수저 청년이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나라야말로 이럴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나. 기회는 평등할 것이라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고. 그리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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