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방송개혁, 촛불혁명의 시대정신 담겨야

2018.01.28 21:19 입력 2018.01.28 21:23 수정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자연스레 영화 <1987>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모두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일성은 ‘감회가 남달랐다. 많이 울었다’였다. 또한 공통점은 뭔지 모를 불편함,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1987>에 여성이 없었다거나 유일한 가상인물이라는 연희를 둘러싼 평가와는 다른, ‘어떤 느낌인데 그게 뭔지 답답하다’ 했다. 그리고 영화 <1987>은 빨갱이가 아닌 선량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변호할 수 있었던 영화 <변호인>보다 한발 더 나간 뭔가를 기대했는데 아쉬웠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래 맞다. 영화 <1987>은 촛불혁명 이후의 영화니까.

[NGO 발언대]진정한 방송개혁, 촛불혁명의 시대정신 담겨야

2015년 캐나다의 트뤼도 신임 총리는 남녀동수로 내각을 구성해 화제가 되었다. 사실 더 사람들의 입에 올랐던 이유는 새 내각 공식 출범 기자회견에서 ‘동수 내각을 중요하게 고려한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트뤼도 총리의 답변 때문이다.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짧은 답변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 맞아, 2015년이지’라는 공감이 있었다.

난 이런 게 시대정신, 시대감각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촛불혁명의 시대감각. 그 감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영화도, 개혁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방송의 힘, 영향력은 대단하다. 촛불혁명이 JTBC <뉴스룸>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송의 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 막강한 힘에 대한 깨달음은 국민들의 언론개혁 요구로, 특히 지상파 공영방송의 민주화, 정상화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그런 국민적 열망이 반영되어 작년부터 방송개혁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촛불혁명의 시대감각을 담은 방송개혁이 정말 필요하구나’를 절감하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KBS 인기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둘러싼 부부 갈등 과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낙태죄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내보낸 사건이다. 두 번째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시즌16> 종영 방송에서 성폭력 가해자에게 연기를 빙자해 면죄부를 준 사건, 마지막은 여성과 젠더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젠더토크쇼’를 표방한 EBS <까칠남녀>에서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 출연자 은하선씨를 하차시킨 사건이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수 주류권력들이 실존하는 소수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어떻게 삭제, 무시하면서 남성가족 중심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남성가족 중심의 전통에 도덕적 우위를 제공하여 여성의 경험과 고민은 이기적이고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성폭력 피해자의 삶과 고통은 삭제된 채 가해자에 대한 연민을 팔아 면죄부를 제공한다. 눈앞에 있음에도 없다고 무시하고 부정하면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웠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일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방송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방송개혁은 정치권력, 재벌권력과의 관계 재편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가 다시 세워야 할 사회정의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방송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성찰해야 진정한 방송개혁이 가능하다. 2018년, 촛불혁명의 시대감각이 담긴 언론개혁이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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