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 미투, 태움에서 배우기

2018.03.23 21:12 입력 2018.03.23 21:35 수정

[세상읽기]다스, 미투, 태움에서 배우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89년,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책이다. 1980년대 중반 터져 나온 민주노조 운동에 맞서 재벌들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세계경영’ 전략을 유행시킬 때였다. 4대 재벌 대우의 사훈은 ‘창조, 도전, 희생’이었다. 그렇게 창조적이던 대우조차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라는 도전 앞에서 헤매다 1999년 더 센 자본에 희생되었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조차 미국 금융자본 모건스탠리에 팔렸고 2009년 ‘서울스퀘어’가 되었다. 자본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넓은 세상을 맘대로 하는 자본조차 영원하진 않다.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있듯 자본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현대차의 하청사 ‘다스’도 그렇다. 다스는 (현대건설 사장 출신) MB가 서울시장이던 2004년 22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다 2007년엔 4000억원대로 급성장한다. 공교롭게도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및 횡령으로 2006년 구속됐는데, 두 달 뒤 보석으로 나왔다. MB 대통령 첫해인 2008년 6월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고, 8월에 사면됐다. 그 뒤 다스의 매출은 ‘일감 몰아주기’로 2009년 4719억원에서 2010년 6409억원으로 약 36%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지금까지 매출이 매년 1조원 이상. 2017년 ‘다스 주인 찾기’ 운동(예, ‘플랜다스의 계’)이 급물살을 탔고, 마침내 실소유주 MB가 구속됐다. 죄는 크고 벌은 뜨겁다.

“나는 일본군의 성노예였다.” 1991년 8월, 김학순 어른은 일본이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공개 폭로했다. 이어 많은 노인이 “나도 성노예였다”며 오늘날 ‘미투’ 운동을 불 지폈다. 한국 정부 등록 피해자는 238명, 세계의 피해자는 20만명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숨죽이다 누군가 용기를 내자 ‘미투’ 물결이 파문을 일으켰다. 세상은 넓고 외칠 일은 많다.

서지현 검사가 JTBC에 나와 남성 선배 검사로부터 성추행당했고 인사 불이익까지 당했다고 폭로한 뒤, 검찰은 물론, 문학, 공연예술, 교육, 의료, 정계, 학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미투’가 번진다. 게다가 2009년 장자연 및 단역 배우 자매 자살 사건처럼 그간 교묘히 파묻혔던 일까지 드러난다. 권력은 강하나 싸울 일은 많다.

한편, 대형병원에서 일하던 27세 간호사가 휴대폰에 “업무 압박과 선배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졌다”는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환자실 환자 간호 중 배액관이 빠지는 ‘실수’를 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몹시 두려웠다. 의료소송 피해사례까지 검색하며 불안에 떨었다. 경찰은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했으나 유족이나 동료들은 실수 이후 의사·선배들이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병원에 공공연하던 ‘태움’이 폭로됐다. 재가 되도록 영혼을 태운다는 말, 섬뜩하다. 선배가 후배를 교육할 때 제대로 가르친다고 식사 동석 거부, 뒷담화, 인사 외면, 회식장소 안 알려주기 등을 행한다. 결국, 병원 자본의 과도한 효율성 추구가 간호사 내부의 인간성 파괴로 치닫는다. 자본은 무한을 추구하나 인력과 인명은 유한하다.

다스, 미투, 태움에 숨은 한 공통점은 수혜자 내지 가해자가 두려움에 떨며 사태의 진실을 부정·부인하는 점이다. 부인 전략, 예전엔 대체로 성공했다. 한편으론 언론과 대중이 피해자나 고발자를 나무랐고, 다른 편으론 피해자 스스로 지쳐 체념·포기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A. W. 섀프가 <중독사회>나 <중독조직>에서 말한, 중독시스템의 일부란 점이다. ‘다스’ 뒤에 숨은 MB는 돈·권력에 중독된 채 주변을 공범으로 만들었다. ‘미투’ 뒤에 숨은 가해자들은 권력·섹스에 중독되어 피해자의 마음을 왜곡했다. ‘태움’ 뒤의 지시자와 병원자본은 돈·성과에 중독되어 환자나 간호사의 웰빙을 뭉갰다. 양심 선언자는 차별·배제됐고 묵인·순종자만 살아남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부끄럽다.

이제 ‘미투’의 용기가 이 중독시스템에 균열을 낸다. 세상이 변한다. 촛불의 기운이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 및 노동과정의 치부를 겨눈다. 더는 숨길 수 없다. 마치 1968년 5월 프랑스 68혁명이 구미 각국으로 번지면서 기존 계급모순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과정에 존재하는 권위주의, 폭력주의, 차별주의 등 각종 문제들을 혁파해나간 것처럼, 우리의 ‘다스’ ‘미투’ ‘태움’ 등 사회적 외침 역시 촛불혁명의 연장선에서 ‘삶의 혁명’을 요구한다. 세상은 넓고 혁명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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