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스템, 시스템의 마음

2018.04.20 20:50 입력 2018.04.20 20:56 수정

해마다 4월이면 삼천리강산이 갈색에서 초록으로 변한다. 그 춥던 겨울을 견딘 나무는 물론, 온갖 들풀과 꽃들도 파스텔 빛깔을 뿜어낸다. 새들이 날아들고 새끼도 친다. 어느새 벌과 나비도 꽃을 활발히 찾는다. 생명의 힘은 위대하고 경이롭다.

과연 이 힘은 어디서 올까?

[세상읽기]마음의 시스템, 시스템의 마음

나는 그 근원을 알지 못한다. 그저 생명의 존재 그 자체가 힘이려니 한다. 하지만 이 생명의 힘이 꺾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진 잘 안다. ‘억지 죽음’이다. 물론, 이 죽음은 생명체의 한 순환이 끝났을 때 오는 자연스러운 죽음과는 다르다. 일례로, 우리가 한평생을 그런대로 살고 숨을 거두면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생명 흐름의 과정이다. 마치 가을에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추운 겨울을 견뎌낸 산천초목들이 새 삶의 순환을 시작하듯 말이다. 그 산천초목들은 겉으로는 죽은 것 같지만 속으로는 생생하다.

이와 달리 산 생명의 힘이 강제로 꺾였을 때 오는 죽음은, 겉은 살아 있되 속이 죽은 것. 정작 걱정할 것은 바로 이 억지 죽음이다. 과연 이건 언제 생길까?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어투를 빌리면, 그 무엇이 있을 곳엔 없고 없을 곳엔 있는 경우,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하지 말 것을 해야 하는 경우, 서두를 것을 느긋하게 하고 느긋해도 될 것을 서두를 경우, 잊을 건 기억하고 기억할 건 잊는 경우, 이런 때가 모두 억지 죽음이다. 마음의 시스템과 시스템의 마음이 병들면 사실상 죽음이다.

최근 삼성 재벌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던 재벌 1세의 유언대로, 글로벌 자본 삼성의 불법 무노조 경영이 80년이나 지속됐다. 다행히 죽음의 시간이 끝나간다.

사실, 그동안 노조 하나 만든다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 이제 민주적·자주적인 노조가 오히려 병든 기업을 제대로 살려낼 것이다.

세월호는 어떤가? 4년 전 이맘때, 대한민국은 눈물바다였다. 한숨 소리가 전국에 넘쳤다. 차가운 바다에 생명을 잃은 304명과 그 가족들, 그 아픔에 동참한 이들이 얼마나 괴로웠던가? 살 만큼 살고 죽으면 복이겠지만, 옳게 살기도 전에 버려진 생명에 대해 과연 저들은 어떻게 했는가? 살려야 하는데도 살리지 않고, 진실마저 거부하며, 잘못한 것도 빌지 않는 저들은 과연 인간인가?

중·고교나 대학 역시 많은 경우 억지 죽음의 공간이다. 하고 싶은 공부나 활동을 못 하는 대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려니 고통이다. 학생들의 겉은 살아 있지만 속은 시커멓게 탄다. 어쩌면 삶을 교육 제도와 취업 제도를 통해 정형화해놓은 것 자체가 이미 죽임의 기획인지 모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팔팔한 청춘들이 맘껏 끼를 발산하게 도와주기는커녕 꽉 짜인 틀 속에 가두니 ‘착한’ 아이들은 순종이 미덕인 줄 알고 따른다. 만일 어느 누가 “이게 아니오!”라 외치면 어른들은 “어린 게 설친다!”며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과연 그 어른들은 제대로 살고 있는가? 행여 권력이나 자본에 길들여진 자신을 모범이라 착각, 아이들을 단죄하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과 질문이야말로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힘이다.

노동시간은 어떤가? 곧 5월1일 노동절이다. 그 기원은 1886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이 외친 ‘8시간’ 노동제다. 무려 1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칼퇴근은 꿈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일중독이란 전염병에 빠져 좀비가 된다. 노동을 반으로 줄여 사회적 필요 노동을 고루 나눠야 산다.

아니나 다를까, 2016년 기준, 한국은 하루 36명, 1년에 1만3000명이 자살한다. 인구 10만명당 26명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더불어 고착화한, OECD 최고 수준이다. 살기 위해 부지런히 설치는데, 결국 죽음이라니?

최근 부정청탁 채용사건이나 조현민식 갑질, 삼성식 노조파괴, 원세훈식 또는 드루킹식 댓글이나 청탁 등도 모두, 하지 말 것을 하고, 바라지 말 것을 바랐기에 생겼다.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야 시스템도 바로잡고,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사람이 건강해진다. 거래의 원리가 아니라 선물의 원리가 희망이다. 자연 파괴와 노동 착취를 그만두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도와주자. 적폐청산과 평화협정은 서두르되, 삶의 리듬은 늦추자. 마음의 시스템과 시스템의 마음,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억지 죽음을 멈추고 사람답게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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