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촛불혁명’의 전진을 겁내나

2018.08.10 20:26 입력 2018.08.10 20:28 수정

“공무원들에게 속고! 구청장에게 속고! 시장한테 속고! 국회의원한테 속고! 장관한테 속고! 대통령한테 속았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거짓말 안 하는 사람, 우리 어려운 사람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뽑으십시오.”

2016년 11월12일, 부산 가덕도에서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한 ‘속고 아지매’ 김씨의 발언이다. 그렇게 ‘보통사람들’은 지난 70년간 속고 또 속았다. 도대체 어떻게 속고 또 속았나?

[세상읽기]누가 ‘촛불혁명’의 전진을 겁내나

우선 공직자들의 ‘거짓말’에 속고 속았다. 선거 전에는 ‘어려운 사람’ 대변한다며 일일이 손잡고 눈까지 맞췄는데, 일단 당선 뒤엔 얼굴 보기도 힘들고 공약처럼 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속았다. 그렇게 70년이 흘러갔다.

한편 10대, 20대들은 ‘어른들’에게 속았다. 특히 이화여대 학사비리가 하나씩 나올 때, 최순실 딸 정유라의,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란 말이 기폭제였다. 안 그래도 ‘헬조선’, N포세대 등 무력감과 자괴감이 끓던 때였다. 그래서 폭발했다. 그 직후의 JTBC ‘태블릿 PC’ 보도는 또 다른 도화선이었다.

마침내 보통사람들이 2016년 10월부터 촛불집회를 시작, 2017년 3월까지 총 1600만명이 참여했다. 광화문에 100만명이 모여도 폭력 없이 평화로웠다. 추운 겨울에도 촛불시민들은 커피와 두유, 군밤을 나누며 서로 위로했다. 함께 울고 웃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재확인했다. 집회가 끝나면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웠다. 마침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구속시켰다. 이것이 2016~2017년 ‘촛불혁명’이다.

헌재의 박근혜 파면 직후 어느 블로거는 “프랑스는 68혁명을 통해 근대의 권위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2017년 한국의 촛불혁명은 권력에 대한 국민 존엄의 승리”라 했다.(김예슬, <촛불혁명>, 334쪽)

그렇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보통사람들이 온몸으로 느낀 게 촛불혁명이다. 그리고 새 대통령을 뽑았다. 그사이 15개월이 흘렀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하는 것처럼, 촛불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물론 아직 이르긴 하다. 게다가 ‘적폐청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촛불혁명의 1단계가 낡은 대통령을 끌어내는 것이었다면, 2단계는 새 대통령과 함께 완전히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속고 아지매’도 환하게 웃을까? 엄밀히 말하면, 아지매를 속인 것은 공직자들의 ‘거짓말’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지매와 같은 보통사람들의 운명을 경제성장이나 일자리에 내맡긴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란 무엇인가? 해마다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이다. 갈수록 경제의 덩치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고용 없는 성장’이다. 게다가 일자리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밥줄이다. 회사 명령대로 순응하며 열심히 일하고 인간적 굴욕감을 억지로 참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렇게 20~30년간 임금 노예로 살다 보면, 사람이 변한다. 몸은 살아 있되, 정신과 혼이 나간다. 그사이에 흙과 물과 공기는 더 병든다. 이번 폭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드러난 기무사의 쿠데타(군사반란) 계획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농단, 노조 탄압, 그리고 공직자 특활비 폐지 거부 등은 경제성장과 일·돈에 중독된 한국 사회를 영속화하려던 신호다. 따라서 청산해야 할 적폐가 단순히 법이나 윤리 차원의 뒤틀림만은 아니다. 성장 중독증과 일·돈 중독증이 개인과 사회를 모두 망치는 심층 적폐다.

그런데 촛불혁명을 진전해야 할 ‘촛불정부’조차 경제성장과 일자리에 중독되어 옴짝달싹 못한다. 재벌에 일자리를 구걸하면서 ‘무한성장’을 위해 자원과 열정을 헛되이 쓸까 우려된다. 대안으로 ‘적정성장’을 도입,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더라도 건강하게 살 궁리를 해야 한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파괴적 물질 성장은 그만하고 인간적 성숙을 도모해야 한다. ‘적정생산-적정소비-적정순환’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돌파구다.

이런 깊은 성찰 없이 관성처럼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를 축으로 하는 무한성장, 무한경쟁에 집착한다면, 갈수록 우리는 더 뜨거운 지구에 살 것이다. 당장엔 선풍기나 에어컨이 무더위 해법 같지만, 이런 상업적 해법만 찾을수록 지구와 사람은 탈출이 더 힘든 덫에 빠진다. 2단계 촛불혁명은 바로 이 덫에 빠지지 않을 길을 ‘미리’ 찾는 일이다. 또 속지 않기 위해 ‘열린 대화’를 펼치자. 무엇이 두려운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