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가 남긴 장기

이것은 어떤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그러나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원통하고 미안하고 서글픈 이야기.

[고병권의 묵묵]불법 체류자가 남긴 장기

주인공은 미얀마에서 온 청년 싼 소티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가족을 부양해왔고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앞둔 듬직한 청년이었다.

며칠 전 그가 죽었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없었다. 병사나 자살도 아니었고, 우연한 사고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어떤 미스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장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고 그 순간을 비디오로 찍은 사람도 있었다. 사실의 차원에서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명백했다.

당시 그는 오전 일을 마치고 공사장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있었다. 건장한 사람 몇몇이 끈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의 정체를 직감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뒤쪽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식당 창문을 뛰어넘는 순간 추적자의 손이 닿았다. 허공에서 균형이 무너진 그는 의도한 착지점을 벗어나 8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멀쩡했던 아들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가슴을 쥐어뜯은 건 아버지뿐이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사람들에 쫓긴 청년의 사망 사건이 연일 뉴스 머리를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경우가 되지 못했다.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다. ‘불법 체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6개월 뒤엔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비자는 이미 만료 상태였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날의 단속과정이 폭력적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무관심이 덮은 사건에서 이런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에 이주노동자 친구에게 들었던 불법 체류자 단속 이야기는 정말로 끔찍했다. 그것은 흡사 동물 사냥 같은 것이었다(과거에는 실제로 그물총을 쏜 적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에도 크게 달랐던 것 같지는 않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따르면, 단속 공무원들은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욕설을 퍼부으며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고 한다.

살벌한 풍경에 놀라 누군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누군가는 초식동물처럼 이리저리 뛰었다고 한다. 그 놀란 초식동물 같던 사람들 중 하나가 소티였다.

시신이란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가장 큰 불의다. 하지만 불의한 결과는 원인을 통해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는 불법체류자였고 단속은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기에 그 결과물인 죽음에도 잘못이 없다.

법적 관점에서만 보면 오히려 문제가 해소되었다. 애초에 없었어야 할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법학으로 다룰 것은 없고 물리학만이 남았다. 청년을 죽게 한 것은 그의 몸무게와 중력가속도, 8m의 높이로 이루어진 물리법칙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십년간 80명 정도가 이런 이 물리법칙 때문에 죽거나 다쳤다.

그렇다면 소티의 죽음에는 아무런 억울함도 없는가. 겨우 스물의 나이에 가난한 부모를 봉양하고 병든 형을 돌보겠다며 이국 만 리를 떠나 온 청년의 죽음에서 우리는 아무런 부당성도 발견할 수 없는가.

나는 여기서 우리 시대의 법과 제도의 부조리를 느낀다.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한다. 범죄가 법적인 타락이라면 불감은 윤리적인 타락이다.

우리는 법적인 정화가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지는 소티의 사례를 세계 곳곳에서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분리된 채로 수용소에 갇혔고(이 중에는 여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이탈리아에서는 난민을 구조한 선박의 입항이 불허됐으며(바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척한 선박만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헝가리에서는 난민을 돕는 시민을 징역에 처하는 법까지 만들어졌다. 사람의 도리를 어겨야만 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두 명의 소티가 있었다.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는 범죄자와 이 땅에서 더없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청년. 사람들은 전자에게 물었다. 왜 법을 어기고 도망쳤느냐고.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소티가 나쁜 아이였느냐고.

법의 눈으로 보았을 때 소티는 자업자득인 죽음을 맞이했고,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소티는 억울한 채로 눈을 감았다.

소티는 뇌사 상태로 2주간 누워 있었다. 너무나 슬프고 억울했을 아버지는 그의 눈과 간, 신장을 한국인들에게 기증했다. 아무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법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아들의 장기를 내놓았다. 한국사회는 아들의 체류를 불허했지만 그는 아들의 장기를 한국인들에게 남겼다.

그 덕분에 우리 중 누군가는 볼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는 몸의 독성을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나를 고개 숙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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