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2019.01.14 20:30 입력 2019.01.14 20:31 수정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칩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걷다가 섰다가 타다가 섰다가 또다시 걷다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좀 더 오래 가는 블루투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읽기]삶이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도착해야 하는 삶이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다가, 간판을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어떤 간판이 있나 위아래로 두리번거립니다. 귀에서 ‘일상으로의 초대’가 흘러나오면 득템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문득 생각합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누군가를 기다리겠구나.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같은 일을 시작하겠구나. 그리고 생각합니다. 저 간판이 삶이구나.

간판 아래서 울고, 웃고, 서로 격려하고, 무언가를 희망하며 부대껴 온 시간들. 처음 가게를 열며 어떤 이름을 붙일지, 어떤 글씨로 쓸지 고민하던 시간들. 이 모든 것이 일상이면서 일상 아닌 특별한 일처럼 다가왔던 시간들.

삶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난 삶을 위해 뭘 했나, 또 나는 지금 살아가고는 있는 건가?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또 이러네 하고 피식 웃고는, 그러니까 삶이지, 라고 하면서 스스로 답까지 해 버립니다.

곧이어 서생의 문제의식만 또 꺼내 드는구나, 푸념을 합니다. 내 처지로 치열하고 애달픈 삶의 현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나, 조금이라도 삶이 던지는 현실 의식을 가질 자격이 있나? 또 질문이 이어집니다. 역시 형이상학적입니다. 어릴 적 옆에서 보기만 했던, 그래서 곁눈질로만 인식했던 간접 체험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간판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하셨던 그분.

내려야 할 곳에 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걷다가 또 간판을 봅니다. 이 습관이 얼마나 갈지는 모릅니다. 생긴 지 얼마 안된 습관이기도 하고. 요새 출퇴근하는 거리 주변은 제법 사람이 많고, 빌딩이 많고, 골목도 좀 있고, 월세도 센 곳입니다. 정기적으로 여기저기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처지이다 보니 8년이나 이 근처에서 간헐적 근무를 했습니다. 모습은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고, 누군가와 인사하고, 휴대전화로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며 걷는 사람들. 부쩍 경비가 삼엄해지고, 거리에 항의성 문구가 늘고, 확성기 소리가 커졌다는 정도의 변화는 눈에 띕니다.

팍팍하다. 이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걷다 보면 느끼게 됩니다. 종종 다니던 식당 네 곳이 사라졌습니다. 한 곳은 작은 식당이었고, 한 곳은 중간 정도, 두 곳은 큰 식당이었습니다. 작은 식당 주인과는 음식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강원도 막된장. 나올 때면 등 뒤로 흐르던 또 오라는 말이 아직도 선한데. 어디서 또 간판을 달았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봤던 모습이나 지금 겪는 현상이 참 비슷하게 와 닿습니다. 건물은 그 자리인데 간판은 올랐다 내렸다 바뀌어 갑니다. 누군가 들여놨던 주방 기기들, 식기들, 식탁들, 의자들이 간판과 함께 명멸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순히 간판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바뀝니다. 이곳에 근무하면서 요새처럼 한꺼번에 식당이 문을 닫는 일은 없었습니다.

상인들은 이유를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서생의 문제의식으로 상인의 현실을 바라봐서 그런 건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문제의식이 시작이겠지만, 해법은 현실에 있고, 결국 답은 몸을 부대끼는 시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꼭 현장을 방문하고, 이해 당사자들과 모여 협의하고, 원만히 협의가 이뤄지도록 공감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지속합니다.

글을 다듬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네요.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주책없이 배가 고프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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