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까? 말까?

2019.03.11 20:45 입력 2019.03.12 15:56 수정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기자들에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논쟁’의 영역이다. 홍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직접 노출한 ‘센’ 발언이 기자에게 고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쓸까? 말까?’

[기자칼럼]쓸까? 말까?

홍 전 대표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은 왜 고민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고민이 시작되는 이유는 ‘쓰는 것’의 몇 가지 효용 때문이다. ① 발언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한다. ② 온라인에서 잘 팔린다. 반대로 ‘쓰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도 있다. ① 요즘 같은 실시간 소통 시대에 굳이 왜 기사로 워딩을 그대로 전달하나. ② 발언 자체에 대한 판단과 검증이 필요하진 않을까.

취재원에게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관의 자세가 필요했다. 객관성, 중립성 등 거리를 유지한 건조한 사실 전달이 언론의 가치였으며 ‘전달자’ ‘매개자’로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했다. 지금도 누군가의 발언과 사진 등이 고스란히 기사화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주요 인사의 발언, 셀럽의 SNS 등은 발화와 거의 동시에 ‘속보’라는 이름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사실 온라인 경쟁만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 관행과 가치는 유효한 측면이 있다. ‘뭐 이런 걸 기사로 쓰느냐’는 악플이 달릴지언정 클릭은 해봤다는 얘기니까.

그렇다보니 아이러니가 생긴다. 독자들이 디지털 시대의 기자와 기사에 기대하는 가치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독점하던 정보나 인물에 대한 접근 장벽은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나만의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제 기자는 따옴표 속에 담긴 ‘말’(text) 자체를 넘어 따옴표 너머의 ‘맥락’(context)을 짚어주는 사람으로 진화해야 한다.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한 현장을 종합적으로 비춰보고 사실이 아닌 진실이 무엇인지 ‘판정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어떤 발언이나 행위가 소수를 향한 혐오이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 언론의 검증 절차, 기자의 독자적 해석과 판단을 전제한, ‘진실의 판정자’로서의 적극적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성애, 수간까지 비화될 것 “5·18민주화운동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 등의 발언을 따옴표 속에 묶어 그대로 전달만 하는 것을 독자들은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2016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라는 공화당 후보를 만났는데, 당시 뉴욕타임스 짐 루텐버그 기자는 기사를 통해 “당신이 트럼프 후보가 가장 최악의 인종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방향으로 선동하려는 사람이라고 믿는 저널리스트라면 어떻게 그를 보도할 것이냐"고 묻는다. 문제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과연 저널리즘의 가치에 맞느냐는 질문이다. 이후 미국에선 유력 정치인의 발언이 사실인지 여부를 ‘체크’해 전달하는 ‘팩트 체크’ 보도가 나타난다. ‘트럼프가 A라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게 아니라 ‘트럼프가 A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틀린 발언이며 B가 맞다’고 보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검증 방법은 사실에 입각해야 하고, 검증의 기반이 된 정보나 발언인의 출처도 투명해야 한다.

당연히 이 같은 역할에는 부담이 따른다. 미국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팩트 체크 기사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기자가 판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가 신문과방송 2월호 기고에서 쓴 문장을 빌려 말하고 싶다. “이 몫을 감당하지 않은 저널리스트,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한 기사는 고작해야 ‘발언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한 결과물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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