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신사의 교훈

2019.06.07 20:32 입력 2019.06.07 20:42 수정
원익선 원광대학교 정역원 교무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는 여전히 죽음의 독소를 내뿜고 있는 근대 일본의 폭력장치다. 얼마 전 그 신사에 부속되어 있는 유슈관을 방문했을 때, 전쟁을 미화하는 냄새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간의 목숨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유골이나 위패도 없는, 단지 죽은 자의 명부만 있는 이곳은 일본열도 불안의 근원지다. 평화헌법 개정을 지향하는 현재의 일본 정계가 과거 비극의 역사를 반복할지 모른다는 사회 각계의 우려 때문이다.

[사유와 성찰]야스쿠니신사의 교훈

원래 신도는 개인의 사후문제에 깊게 대응하지 않은 종교다. 그러나 막부말기 내전에서 일왕을 옹호하면서 죽어간 자들의 영혼을 집단적으로 기리기 위해 1869년 도쿄초혼사(招魂社)가 세워졌고, 1879년 야스쿠니신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왕의 반대파는 일체 합사되지 않은 이곳은 일제가 침략전쟁을 벌이면서 순국지사를 위령하는 곳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직후에는 메이지왕이 이곳을 참배했고, 아시아·태평양전쟁 때 군인들은 “구단(야스쿠니신사가 있는 곳의 지명)에서 만나자”며 죽어갔다. 그들의 신앙 대상은 일왕이었으며, 야스쿠니는 그들의 내세를 보증하는 극락정토였다.

근세에 얼굴도 모르던 일왕의 존재는 근대국가의 성립과 동시에 국가권력의 상징이자 실권자로서 등극한다. 숱한 국가경축일, 일왕의 퍼레이드, 신의 왕림과 같은 일왕의 전국순회를 통해 일본은 ‘일억일심(一億一心)’의 국민국가를 창출해 갔다. 일왕의 신성함을 보증하기 위해 그들은 신도를 국가의 종사(宗祀)로 삼았고, 일왕은 그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를 국가신도라 부른다. 국가신도의 기반은 1889년 일본제국헌법의 제정으로 갖춰지는데, 이 헌법 1조부터 17조에는 일왕의 무소불위 권한을 명기했다. 만세일계(萬世一係)의 신이 통치한다는 신화에 근거하여 일왕의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국체(國體)다. 그리고 각지의 다양한 문화와 관습, 전통을 가진 백성을 동질·균질화하였고, 언어, 군역, 납세, 교육 등을 공유하는 제정일치 국민국가의 신민으로 삼았다.

전사자를 영령(英靈)으로 부르고, 정치화된 죽음을 야스쿠니에 안치함으로써 살아있는 자들마저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침략을 받은 이웃나라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이유는, A급전범 합사는 물론 그들과 함께 강제 동원된 동포들의 영혼을 안치하고, 식민지 및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몰염치함 때문이다. 나아가 그 이면에는 일본이 다시 메이지시대의 제정일치국가로 회귀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치계에 확산되고 있는 일본회의나 신도정치연맹은 신성한 일왕을 숭배하는 국체를 재가공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0월 이세신궁을 참배했다. 이세신궁은 일왕가의 조상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를 제사 지내는 국가신도의 정점에 있는 신사다. 일본회의국회의원 간담회에서 일본의 전 방위대신 이나다 도모미는 “진무왕의 위업으로 돌아가 일본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면서 개혁을 이루어가는 것이 메이지유신의 정신이었다. 그 정신을 되찾아야만 하며, 일치단결하여 노력하겠다”고 했다. 진무왕은 고대 신도국가를 세운 신화적 인물이며, 근대 일본은 진무왕의 통치를 이상으로 내세우고 신도국교화를 진행했다.

현재 일본은 이러한 근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시민을 또다시 국가에 종속시키고자 한다. 겉으로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운 일본 근대국가는 스스로 종교가 되어 여타 종교를 지배했다. ‘교육칙어’ ‘군인칙유’는 곧 국민의 경전이었고, 학교와 군대는 교회가 되었으며, 야스쿠니신사는 국민이 현생에 죽어 신이 되는 허망한 안식처였다. 따라서 평화운동가 즈시 미노루는 대만이나 한반도에 세워진 신사를 군국주의의 상징인 침략신사라고 부른다.

일본 정치계에는 스스로 미풍이라 일컫는 화(和)의 정신으로 현인신인 왕과 국민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일본 국체의 이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자 했던 근대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어쩌면 근대 일본을 기획한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이 기축으로 삼아야 할 것은 왕실이라고 한 말이 재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새롭게 등극한 인간으로서의 현재 일왕이 얼마나 과거를 기억하고 평화를 견지해 나갈지도 하나의 관건이다.

종교가 국가에 종속될 때 지옥으로도 치달을 수 있음을 근대 일본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국내에서도 종교계를 자기 표밭으로 삼고자 좌충우돌하는 이 땅의 위정자들은 이러한 과거의 무지와 오류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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