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민 공주의 ‘새로운 세상’

2019.07.15 20:49 입력 2019.07.16 21:18 수정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 실사(實寫)영화 <알라딘> 관객 수가 지난 14일 1000만명을 돌파했다. 해외 영화 중에선 역대 7번째다. 인기는 극장 밖에서도 실감된다. 카페에 들어가든 택시를 타든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가 열창하는 ‘스피치리스(Speechless·말을 못 하는)’가 흘러나온다. 자스민은 술탄의 ‘안사람’이 되기를 거부했다. 직접 술탄이 되고자 했다.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며 왕자와의 결혼을 압박하는 아버지에게 “다른 나라 왕자가 나보다 더 이 왕국을 사랑하겠느냐”며 술탄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철권을 휘두르는 실력자가 화초처럼 가만히 있으라 하자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투쟁을 통해 마침내 술탄을 쟁취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진화한, 강인하고 진취적인 자스민의 매력을 주요 흥행 요인으로 꼽는다.

[김민아 칼럼]자스민 공주의 ‘새로운 세상’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는 ‘걸크러시(여성이 다른 여성의 동경·찬양 대상이 됨)’의 전시장이다. 포털업계 고위직 여성인 배타미(임수정)·송가경(전혜진)·차현(이다희)은 각자 성공이란 욕망을 향해 질주한다. 경쟁하는 이도, 협력하는 이도 여성이다. 이른바 ‘민폐녀’ 캐릭터나 백마 타고 온 왕자는 없다. <검블유>는 지상파·케이블·종합편성채널을 모두 망라한 ‘드라마 화제성 지수’(굿데이터코퍼레이션·7월1주)에서 3위에 올랐다.

전통적으로 욕망은 남성의 언어였다. 남성이 권력을 욕망하면 ‘권력의지’로 상찬되는데, 여성이 같은 걸 꿈꾸면 ‘권력욕’으로 폄훼되기 일쑤였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도록 가정과 사회에서 압력을 받아온 여성들은 ‘무슨 여자가 그렇게 욕심이 많아’란 비난 앞에 맥없이 무릎이 꺾이곤 했다.

문화상품은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예민하고 영리한 촉수 없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금세 낙오하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영화와 드라마가, 지금 대세는 ‘욕망에 솔직한’ 여성들임을 말한다. 자스민과 배타미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최근 폐막한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 대표팀의 주장 메건 래피노다.

래피노는 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미국의 2연패, 통산 4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골든부트(득점왕)와 골든볼(최우수선수)까지 휩쓸었다. 하지만 부와 명예에 만족하는 대신 더 큰 욕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 여자축구대표팀은 지난 3월 미 축구협회를 상대로 남녀대표팀의 임금·포상 차별에 항의하는 소송을 냈다. 여자대표팀 대변인은 “우리 팀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더 높은 TV시청률을 올리고 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적은 보수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선 여자축구가 남자축구에 비해 국제대회 성적은 물론 인기도 앞선다. 대중도 미 여자축구대표팀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여자월드컵 시상식과 대표팀의 뉴욕 카퍼레이드에서 군중은 “동일 임금(Equal pay)”을 연호했다.

세계 최고의 여자축구 스타가 된 래피노는 방송이나 광고 출연만으로도 천문학적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개인적 공격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어젠다에 굳이 눈 돌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확장해 시스템을 바꾸려 한다. 자스민이 주저앉지 않고 술탄이 되었기에 그의 딸과 손녀도 술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래피노가 동일운동·동일임금(Equal play·Equal pay)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축구는 물론 다른 종목의 선수들까지 성별과 무관하게 공정한 대우를 받는 길이 열릴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소탈하고 포용적인 ‘무티(엄마) 리더십’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도전을 통해 이 자리에 이르렀다. 1991년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동독 출신 과학자 메르켈을 통일 독일의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하며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정치적 부녀 관계로 각인됐다. 그러나 1998년 콜 총리와 소속 기독교민주당(CDU)이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로 위기에 빠지자 메르켈은 “콜의 시대는 갔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메르켈은 2000년 CDU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되고, 다시 5년 후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다. 메르켈은 자스민이었다.

욕망에 솔직한 여자들, 도전을 겁내지 않는 여자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여자들만 그래선 안된다. 청년과 장애인과 서민과 노동자도 ‘스피치리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욕망을 표출하고 추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야 한다. 더 많은 여성·청년·장애인·서민·노동자가 강요된 침묵에서 깨어날수록 세상은 더 평등해지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바로 ‘A Whole New World’(알라딘 주제곡·완전히 새로운 세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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