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페스티벌과 인류세

2019.11.14 21:01 입력 2019.11.14 21:02 수정

지난 10월 중순 플랫폼창동61에서 열린 레게 페스타에서 인상 깊은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강의 주제는 ‘음악페스티벌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였다. 강연자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연간 1만5000회의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중에서 페스티벌 참가자가 평균 5000명일 경우 하루에 100ℓ 쓰레기 봉지 90개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연간 음악페스티벌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만 720억원이 든다.

[세상읽기]음악 페스티벌과 인류세

음악페스티벌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은 일회용 용기와 버린 음식물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어느 한 음악페스티벌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일회용 용기를 쓰지 않고, 재생 가능한 용기를 모든 관객들에게 나눠주고 사전 교육을 하니 쓰레기가 9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지난 10년 사이 다양한 형태의 아웃도어 음악페스티벌이 급증하면서 관객이 먹고 버린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다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음악페스티벌을 금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페스티벌에서 즐겁게 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죄악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음악페스티벌을 즐기면서 지구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생태적 행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지난 11월10일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환경재단이 주최한 ‘에코페스트 2019’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 주최 측은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컵과 다회용기, 수저를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결과 시민 1인당 버린 쓰레기는 14g에 불과했다. 페스티벌에 사용한 현수막과 배너도 재생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했다. 일본의 후지록 페스티벌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기 위해 그해에 사용한 플라스틱 제품을 재활용하여 다음해에 페트병으로 사용한다. 한국에도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등 환경을 생각하는 생태적 페스티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대부분 페스티벌은 여전히 과하게 먹고 편하게 버리는 데 익숙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연간 500만t이나 된다. 쓰레기 처리비용도 연 8000억원이 든다고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음식물 쓰레기 양은 총 13억t이고, 전체 음식물의 30%가량이 버려진다. 음식물 쓰레기는 인간의 과소비 욕망의 가장 야만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심각한 기후위기의 시대를 일컬어 ‘인류세의 시대’라고 한다. 지난 1만년 동안 지구의 지질은 홀로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지질의 형태가 좌우되는 시대는 더 이상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의 시대이다. 먼 미래 지구의 화석으로 남을 것은 오직 썩지 않는 플라스틱뿐이다. 패스트푸드의 증가와 일회용 용기의 과다사용, 육식의 증가에 따른 메테인 가스의 증가, 이산화탄소 흡수를 막는 아마존 밀림의 벌목, 자동차 포함 에너지 과다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 등은 파국적 인류세의 증표들이다.

고기를 아주 좋아하던 딸아이가 최근에 육식을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선언했다. 올 6월 반려견을 키우면서부터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육식을 줄이면, 야만적인 공장식 축산업이 줄어들고, 탄소 배출량도 감소해 매년 35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인류세의 시대에 인간의 욕망과 지구의 생태 사이에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음악페스티벌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은 인류세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이다. 지난 11월6일 세계 153개국 1만1000명의 과학자가 공동성명을 내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즉각적인 행동을 선언했다. 아웃도어 음악페스티벌을 기획, 제작하는 사람들도 함께 연대해서 페스티벌 기간에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육류 메뉴를 줄이는 페스티벌 기후행동 선언이 필요하다. 인류세의 시대에 즐거운 음악페스티벌이 적어도 지구 재앙의 장소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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