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 냉해와 농작물재해보험

2020.05.18 03:00 입력 2020.05.18 03:06 수정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아주 따뜻한 겨울이었다. 도시가스비 고지서에서 전년 대비 사용량을 보니 난방비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과 칩거하다 보니 여느 때보다 가스불로 밥도 많이 지었는데 말이다. 지난겨울에는 눈도 거의 내리지 않은 데다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은 습한 겨울이었다. 시설재배 농가에서는 겨울 난방비를 조금 절약하기도 했지만 노지 작물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병해충들이 이르게 활동해 작물을 망칠까 싶어서였고, 과일나무나 두릅나무 같은 임산물에 너무 일찍 물이 올라 느닷없이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그대로 꽃이 얼어버릴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난달 4일부터 6일 사이에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을 정도로 추웠다. 예년보다 과일나무 꽃들은 일찍 피었고 인공수분을 해야 할 계절도 앞당겨졌건만 야속하게 때맞춰 영하로 기온이 떨어졌다. 특히 배, 복숭아, 사과 주산지의 피해가 크다. 과수의 냉해는 올해뿐 아니라 그 이듬해까지 봐야 한다. 수분·수정 불량으로 생육 부진이 오면 착과율이 떨어지고 내년 개화에도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많은 과수농가들이 2년 전에도 냉해를 입었고 올해 겨우 회복기에 접어들다가 또 꽃이 얼어터져 버린 것이다.

듣기 좋으라고 기후변화지 농촌에서는 기후재앙이 반복된다. 내겐 두꺼운 패딩 점퍼 대신 경량 패딩 점퍼로 한겨울 날 수 있겠구나 정도의 체감이지만 농어민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씨 변화로 농사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가축들 건사도 어렵다. 60년간 농사를 지은 팔순의 한 여성 농민은 내게 “농사 모르겠다”고 한다.

하루이틀 노력으로 온난화를 해결할 수 없어도 제도적 해결은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영농비를 확보하게 하고 영농 의지를 완전히 꺾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제도가 농업보험이다. 농업보험은 크게 농업인안전보험, 농업재해보험, 농기계보험이 있으며,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는 정책보험이다. 그중에서도 농작물재해보험은 NH손해보험(농협)이 독점 운용한다. 농업보험은 민간 보험회사에서 상품 출시를 꺼려서 국가가 나선 것이기도 하다.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국비와 지자체 보조가 80%, 농민 자부담이 20% 내외다. 주계약은 풍수해이고 특약조항이었던 냉해도 2019년부터 주계약 항목이다. 공공보조가 있는 만큼 위험에 대비해 가입하라고 나도 주변 농민들에게 권유하곤 했다.

하지만 많은 농가에서는 농업재해보험에 회의적이다. 막상 재해가 터지면 손해사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다. 제대로 열매를 맺지도 못할 꽃이 나무에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 산정에서 빠진다거나 ‘냉해’면 확실하게 모두 얼어버려야 하는데 꽃 몇 송이가 눈치 없이(?) 말갛게 살아남으면 손해사정사들에게는 그 꽃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피해 보상률이 80%에서 50%로 하향조정되었다. 예외로 지난 3년간 피해가 없어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다면 70%까지 피해 보상을 해주지만 농사지으면서 풍수해를 3년 동안 피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물론 100% 외부 피해가 인정될 때나 해당하는 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은 농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피해를 과장하는 데다 보험금 지급이 과하게 증가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어차피 당사자 돈은 20%만 들어갈 뿐이고 적은 보험금이라도 타면 이득이지 않으냐며 힐난도 한다. 그런데 20%의 자부담이 정말 부담스러워 보험에 못 드는 농민들도 많다. 농협빚 독촉을 받고 사는 처지에 농협에 가서 보험 드는 일이 어디 쉬운가. 영농비 한 푼이 아쉬워서 소멸성인 그 20%의 자부담도 버겁다. 보험사기꾼이 아닌 다음에야 알량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생존의 터전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비록 폭락장이어도 사과 한 알, 포도 한 송이라도 공판장에 보내려고 오늘도 애쓰는 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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