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방관하는 경찰, 갈등에 뒷짐 진 지자체

2020.11.02 03:00 입력 2020.11.02 03:02 수정

노량진역 1번 출구 앞에는 육교가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으로 새로 지어진 신시장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입주를 거부했던 상인들은 옛 시장에서 쫓겨난 뒤 벌써 1년 가까이 육교 위에서 농성 중이다. 수협은 올해 6월, 옛 시장과 맞닿아 있던 육교의 반대편 계단을 철거했다. 한쪽 다리로 서 있는 긴 육교는 바람만 불어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그리고 지난달 29일 새벽, 수협은 육교에 진입해 농성자들에게 물포와 소화기를 쏘았다. 육교는 철도부지로 수협의 관리나 권한이 미치지 않는 곳이지만 수협은 다리를 다시 연결한다는 이유로 농성장을 침탈하고, 농성 중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고압의 물포와 매캐한 소화기, 농성자들에게 방향을 맞춘 강풍, 원인을 알 수 없는 맵고 따가운 기운이 두 시간 가까이 농성자들을 때렸다. 기온이 5도에 불과했던 새벽, 하얗게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쓰고 쓰라린 피부에서 수포가 하나둘 올라오던 농성자들은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더 심각한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경찰은 육교의 한쪽에선 용역의 폭력을 방관했고, 다른 쪽에선 농성장의 출입구를 차단했다. 수협의 폭력에 대해 개입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다. 왜 통행을 막는지 여러 번 물었지만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밝힌 후 용역 폭력에 대한 엄정 대응을 권고한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량진수산시장의 문제에 대해 양쪽의 입장이 있지 않겠냐며 중립을 자처한다. 그러나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누구에게 이익을 집중시키고, 누구에게 집중적으로 피해를 전가하는지 질문한다면 중립은 성립하지 않는다. 상인들은 줄곧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수협의 부동산 개발이익을 중심에 둔 ‘잘못된 첫 단추’라는 것, 서울미래유산 노량진수산시장을 일부라도 존치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왔다. 구시장은 이미 모두 철거해버렸기에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장사할 수 있는 공동부지라도 마련되면 그곳에서 장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폭력은 공공의 오랜 묵인 위에 자랐다. 용역의 폭력을 방관하는 경찰, 갈등을 조율하지 않는 지자체, 세입자의 권리를 미세하게만 인정하는 법, 강제집행을 허가하는 법원,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 떼를 쓰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의 시선. 이 같은 세상의 역동은 폭력과 짝이 되어 저항하는 사람들을 쓸어버렸다. 서울시는 여러 차례 해결을 약속했지만, 상인들과의 약속을 번번이 어겼다. 그 오랜 침묵이 더 큰 폭력에 대한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다. 두렵지 않은가.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지금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이들이 지내온 육교의 모양을 생각해보건대, 이 말에는 한 조각의 은유도 없다. 더는 침묵하지 말라. 시장 개설권자인 서울시는 조속히 해결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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