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꼽은 올해의 책

2020.12.12 03:00

책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 하다. 책 목록 자체가 사회의 맥락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해마다 ‘올해의 책’ 리스트를 궁금해하는 이유다. 연말에 곳곳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할 테지만, 그에 앞서 나도 ‘올해의 책’을 몇 권 소개해본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먼저 소개할 책은 <김지은입니다>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노동자 김지은씨의 책이다. 이 책의 화자는 ‘김지은’이지만, 무수한 ‘김지은들’의 책이기도 하다.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났을 때 그 ‘김지은들’은 이 책을 서로에게 선물하고, 함께 읽음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연대하며 항의했다. 그간 고발된 고위 공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을 비롯하여 직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성폭력 사건을 목도하며 이 문제를 사사로이 여기며 은폐할 게 아니라 ‘산업재해’라는 공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여러 도서관에서 ‘비치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국가나 공공기관이 금하는 책은 널리 읽혀야 할 양서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도 좋은 책일 것이 분명하므로 권한다.

그다음 소개할 책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다. ‘추적단 불꽃’이 기록한 N번방 추적기다. N번방은 ‘추적단 불꽃’이라는 평범한 여성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후 잠입 취재와 모니터링을 통해 실체에 접근하고, 언론사를 통해 공론화되었다. 2020년을 압축하는 단어는 ‘코로나19’가 압도적이겠으나, 그걸 제외하고 올해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단어는 ‘N번방’ 아닐까? 그만큼 올해는 ‘코로나19’와 ‘N번방’이라는 두 개의 바이러스가 우리 사이를 배회했다. 또한 올해의 인물 두 명을 꼽는다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추적단 불꽃’이 아닐까?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구한 여성들이다. ‘코로나19’는 백신이 나오고 있지만 ‘N번방’을 잡을 백신은 요원하다. 백신을 향한 지난한 여정에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권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쟁점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누군가는 ‘검찰개혁’을 ‘최종심급’처럼 여기지만, 꼭 필요한 법들이 국회의 높은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일터에서 사망한 김용균의 죽음과 같은 노동자의 죽음을 막자는 취지를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사회 구성원의 인권을 위한 ‘차별금지법’ 등이 검찰개혁보다 ‘나중에’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낙태죄 폐지’도 그렇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한 후, 긴 침묵 끝에 정부에서 입법안을 발표했지만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위해 오래 싸워온 이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낙태죄 폐지’는 성별을 가르거나 종교적 편견을 앞세울 문제가 아니다. 함께 숙고하며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해 섣불리 말하기 전에 진지하게 배우라는 의미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특별히 권한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올해의 ○○’을 꼽으며 한 해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자의 목록을 작성하길 권하며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게 산 모두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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