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

2021.03.03 03:00 입력 2021.03.03 03:02 수정

[강준만의 화이부동]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라는 말은 데카르트가 했다곤 하지만, 이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너무도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 의외로 이걸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끝날 일인데도 한사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도대체 왜 그러지?”라는 의문을 가져 봤을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물론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 워낙 크고 두려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잘못의 인정이 꼭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쓸데없는 변명이 늘면서 사실을 왜곡하게 되고, 그래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일을 잘해온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으므로 모두 힘을 합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고 우기면 그간 잘해온 일마저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딱하다 못해 안타까운 건 그 사람이 그렇게 우김으로써 얻는 실익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기 위해 그런다고 해도 평판이라는 게 홀로 ‘정신승리’를 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심리적 상처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납득할 수는 있을망정 언제까지 그 상처에 휘둘려 사실상 자해(自害)에 가까운 고집을 피워야 한단 말인가.

야당의 백신 공세 피하려다
접종 불안감 키우는 정부·여당
잘못만 인정하면 끝날 일에
해결 어렵고 불필요한 갈등만
그래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코로나 백신 접종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나는 그간 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줘 온 사람이다. 신문 칼럼을 통해 “정부를 비롯한 공적 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매우 낮았지만, 이젠 오히려 찬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까지 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가 ‘코로나 국뽕’ 신드롬을 비판하면서 “평소 냉철한 척하던 학자와 언론인까지, 조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거의 엑스터시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을 때, 나도 해당되는 것 같아 내심 뜨끔하기도 했다.

정부의 K방역 자화자찬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걸 비판하는 목소리엔 ‘모처럼 잘한 일 하나 생겼는데 뻐길 만하지 않은가. 인정할 건 인정해주자’며 마음속으로 반론을 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2월, 백신 선구매를 서둘렀던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백신 확보 경쟁에서 한참 뒤져 있다는 게 뜨거운 쟁점이 되었을 때도 정부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문 정권이 잘못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잘하겠다고 했으면 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K방역 자화자찬에 중독된 탓인지 정부와 여당 모두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잘못한 게 전혀 없다고 빡빡 우기는 게 아닌가.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백신 불안감’을 부추기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이들의 발언들이 볼 만했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유는 사망자가 수만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급한 접종보다 안전한 접종이 우선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김종민) “코로나 방역에서 실패한 미국과 영국이 백신 개발에서 앞서 백신 접종을 먼저 시작했다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이 맞는가.”(김성주) “미국은 매일 20만명의 확진자가 나온다. 백신이 유일한 대책인 나라다. 백신 접종 후 안면마비 등 부작용에 대한 보도도 나오고 있지 않으냐.”(김태년) “백신을 계약하고 구매하는 것은 나라 간 비밀협약이어서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 들여온다는 것을 쉽게 얘기할 수 없다.“(고민정) “국민의힘은 완벽하게 검증받지 못한 ‘백신 추정 주사’를 국민에게 주입하자고 한다. 사실상 국민을 ‘코로나 마루타’로 삼자는 것이다. 의료 목적이라 주장했던 일본 731부대의 망령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부활한 것 같아 안타깝다.”(장경태)

정부도 만만치 않았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백신의 심각한 부작용을 감안해 국민 건강을 우선 고려해 협상을 진행해왔다”고 백신 확보에 뒤처진 걸 변명하면서 화이자 백신은 알레르기·안면마비가, 모더나는 오한·근육통과 얼굴 반쪽이 아래로 처지는 부작용이 나왔다는 걸 별도 자료 묶음으로 내놨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복지부 대변인)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그런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하고 그런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렇듯 정부·여당이 백신의 부작용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국민의 백신 불안감을 가중할 수 있다. 불안감이 커지면 접종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백신 개발 초기 불확실성이 컸던 상황을 설명하며 국민에게 사과한 뒤 이해를 구하면 될 일을 변명해 문제를 키우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월19~20일 실시한 백신 접종 여론조사에서 ‘순서가 와도 접종을 연기하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응답이 45.7%였으며, ‘백신을 맞지 않겠다’(5.1%)는 응답까지 합하면 정부가 세운 백신 접종 계획에 부정적인 반응이 50.8%로 절반이 넘었다.

이런 백신 불안감을 키운 주범이 누구인가? 바로 정부·여당이 아닌가?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이 “아스트라제네카 1번 접종을 대통령부터 하시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의 주장에 질병관리청 지침(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에서 65세 이상 제외)을 들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고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그런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실언을 했다. 그는 대통령이 백신 주사를 먼저 맞으라는 건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라며 “국가원수가 실험 대상인가”라고 했다. 정 의원은 ‘실험 대상’ 운운하는 말이 백신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걸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걸까?

자, 이제 다시 물어보자. 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 백신 늑장이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기 위해 국민의 백신 불안감을 부추기는 이런 일련의 행태를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어떤 심리적 상처가 있길래 그런 실속 없는 고집을 피우는가?

나는 반독재 투쟁 시 기승을 부린 이른바 ‘조직보위론’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편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걸 알리거나 비판하는 건 독재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절대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 이게 바로 조직보위론이다. 이 조직보위론은 독재정권 시절 진보진영 내부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용도로까지 사용되었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건 ‘조직보위론 DNA’를 갖고 있는 운동가 출신의 정치인들이 독재정권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에게까지 이 DNA를 전파시켰다는 점이다.

조직보위론의 상처는 아직도 문 정권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들은 세상이 엄청나게 달라진 가운데 자신들이 사회 각 부문을 포위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이 포위당하고 있다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자신들을 둘러싼 적(敵)의 실체와 규모를 과장하면서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큰일 난다”며 ‘약자 코스프레’와 ‘완벽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뭔가? 없다. 아니 있기는 한데, 그게 좀 엽기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없던 적도 만들어내고 아군마저 적군으로 돌리는 ‘뺄셈의 정치’를 기가 막히게 잘 한다는 점이다. 공자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 그러한 잘못을 고치지 않는 자는 머지않아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고 했다. 공자의 말이라고 꼰대의 헛소리로 들을 일이 아니다. 손가락을 꼽아보라.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일로 키운 게 한두 번인가. 우리 모두 명심하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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