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개인이 되기 위해

2021.05.29 03:00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8세·5세 두 아들의 주양육자인 아내에게 나는 자주 “당신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니까 당신을 먼저 챙기면 좋겠어” 하고 말해왔다. 그가 실제로 힘겨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덟 살일 때 이렇게 힘이 세고, 다섯 살일 때는 이렇게 말을 안 들었나 싶을 만큼 아이들은 부쩍 자랐다. 그 몸과 마음들이 나도 잘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주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양육이란 대개 아이들과의 놀이에 있는 듯하다. 될 수 있는 대로 아내가 할 수 없는 놀이들을 해준다. 허리가 부서질 만큼 놀아주고서 쓰러지고 나면 나보다 더 힘겨워하는 아내가 보인다.

육아는 단순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도 준비하는 시간이 더욱 긴 노동이다. 그의 육아는 새벽에도 계속된다. 예를 들면, 두 아이는 자주 이불 빨래를 하게 만든다. 언젠가도 새벽에 이불이 젖어서 모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이불이 건조대에 널려 있던 참이었다. 아내는 젖은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마지막 남은 이불을 꺼냈다. 반쯤 감긴 눈으로 “괜찮아, 괜찮아” 하고 이불을 깔고 누운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이불이 젖고 말았다. 그때 아내는 아이를 붙잡고 자신에게 왜 그러느냐고 하면서 울었다. 이제는 더 이상 깔고 덮을 이불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두 남자아이를 양육한다는 건 이러한 재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양육자에게 “당신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 하고 말하는 건 공허할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내가 나에게 “요즘 정말 행복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해”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고 내가 육아에 적극 동참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이불을 적시고 나는 말만 보낼 뿐이다. 그의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 그러니까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와 인덕션이었다.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가전을 사기로 했다. 아내는 이불 빨래를 감당할 수 없다면서 건조기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해 온 셈이다. 건조기를 사면서 식기세척기와 인덕션을 함께 샀다. 그 후 아내는 아이들이 이불을 적시면 익숙한 손길로 새로운 이부자리를 펼치면서 웃는다. 아이들이 아니라 나를 보면서 “괜찮아, 얼마든지 이불이 젖어도 괜찮아, 우리에겐 건조기가 있잖아” 하고 말한다. 식기세척기를 돌려두고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생겼고, 인덕션은 음식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많이 줄여주었다.

역시, 말과 마음으로만 해결되는 일은 별로 없다. “당신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니까, 당신을 먼저 챙기면 좋겠어”라는 말은 8년 내내 공허했지만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와 인덕션은 이 상황을 정말로 좋아지게 만들었다. 결국 사람을 바꾸기는 어렵고 사람을 둘러싼 구조를 바꾸어야만 한다. 작은 가정에서의 일이 그렇듯 사회에서의 일도 그럴 것이다. 구조가 바뀌어야 사람이 바뀐다.

이제 아내는 자신과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조금 더 내고 있다. 나는 그동안 “당신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해.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말고 당신을 위해서 뭘 할지 생각해줘” 하고 말했으나, 그에게 그런 여유를 선물한 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가전제품이었다. 아이는 새로 이사한 도시가 좋다면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해 왔다. 역시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부모의 행복한 마음은 아이에게도 전해진다.

공허한 말보다는 나와 타인을 둘러싼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기에 당분간은 말과 마음으로 계속 대신하게 되겠으나, 그래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나의 몸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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