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읽는 문학작품에서는 비교적 넓은 범위의 일이 그럴듯한 일로서 허용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숲에서 만난 토끼가 회중시계를 보고 뛰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동화의 독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똥>에서 돌이네 강아지 흰둥이가 담 밑 구석 쪽에 누고 간 똥은 소달구지 바퀴 자국 한가운데 뒹굴고 있던 흙덩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어린이는 이야기 안에서 말이 되는 것 같으면 최선을 다해서 믿는다. 그들의 눈에 세상은 무한히 넓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진실이 많으므로 섣불리 “말도 안 돼!”라고 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따라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도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면, 구해내야만 하는 아주 간절한 무엇이 있다면 동화의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자신이 지닌 작은 것 모두를 그 일에 건다. 작가는 독자의 넓은 품을 믿고 신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종종 어린이가 감당할 수 있는 긴 슬픔과 세계의 뒷면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성장의 과정은 어둠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동화 <몬스터 콜스>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린이의 처절한 분투를 그렸으며, 그림책 <잘 가, 안녕>은 길에서 무고하게 죽은 동물의 장례식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한편 어린이에게는 이미 걸러지지 않은 무수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어린이가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도록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아픔의 경험에 다리를 놓아주자는 것이 작가들의 마음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남은 동전을 세는 게임처럼 실시간 오락으로 소비하는 일, 고통 받는 존재에 존엄의 서열을 매기는 일이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벌어진다. 그러나 세계 속의 어느 죽음도 게임이 될 수는 없다. 이름 없는 곳에서 살아간 실존이라도 죽음은 숭고하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어린이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이 진리에 다가가고자 애쓴다. 어른은 지나쳐버리는 죽음 앞에서도 어린이는 우주적으로 슬퍼한다. 이해하기 힘든 슬픔을 어린이 혼자 감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작가는 아주 조심스럽게 죽음을 말하는 동화를 쓴다.

그럼에도 동화작가들이 거의 작품에서 다루지 않는 죽음이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다. 성장 중인 사람은 죽음을 상상할지언정 꿈꾸지는 않는다. 반환점이 어딘지도 모르는 출발선에 서서 죽기부터 결심하는 어린이는, 아마도 없다. 만약 어린이가, 청소년이 스스로 죽음을 결심한다면 그것은 동화 속에서조차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어떤 문제가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헤아리기 힘든 비극이 죽음 뒤에 있을 것이다.

어린이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2일 청주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여자 중학생 두 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은 유서를 남기고 함께 목숨을 끊었다. 양부의 학대, 친구의 양부가 저지른 성폭력에 대해 학교 상담실에 알리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구속영장은 되풀이해서 반려된 상태다. 그들의 겨울과 봄을 생각한다. 고통의 여러 해를 생각한다. 힘든 친구의 집에 찾아간 다른 친구의 마음을 생각한다. 두 여학생이 손을 잡고 상담센터를 찾았을 때까지의 걸음을 생각한다. 경찰서에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여러 질문에 답해야 했을 막막함과 그들에게 거듭 던져졌을 물음을 생각한다.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동네로 돌아가야 했을, 그 학생들의 울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동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남겨진 우리가 끝까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애통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고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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