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이제라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을 때의 대처방식은 대개 두 가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인정 혹은 체념하며 받아들이거나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를 살피고 대책을 찾는 것이다. 어떠한 대처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더 크게 우려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위기를 잘 극복한 좋은 선례를 만들 수도 있다.

이성희 정책사회부 차장

이성희 정책사회부 차장

교육부가 지난 2일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계 안팎에서 우려했던 대로 학생들의 학습결손과 학력저하 현실이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평가대상인 중3과 고2 모두 지난해 국어·영어·수학에서 수업 내용을 상당 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1수준)이 늘었다. 중3의 경우 영어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7.1%로 2019년(3.3%)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국어(4.1%→6.4%)와 수학(11.8%→13.4%)의 미달 수준도 전년보다 늘었다. 고2도 마찬가지다. 영어 과목의 미달 비율은 8.6%나 됐다.

교육 전문가들은 영어 과목의 기초학력 미달 급증에 주목한다. 영어는 사교육 의존도가 특히 심한 과목이다. 지난해 초·중·고교 사교육비 현황을 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21만7000원을 영어 과목에 지출했다. 수학(20만4000원), 국어(12만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다른 과목의 사교육비는 다 줄었지만 영어에 ‘투자한’ 금액은 2019년(21만4000원)보다 늘었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는 직접 파악할 수 없는 부모 지위와 경제력에 따른 학생 간 학력격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겹쳐지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아이의 성적표에서 ‘노력 요함’이라는 영어 과목 평가 결과를 본 주변 학부모들의 반응이다.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는데, 수업 첫해 성적을 받고보니 ‘학교 수업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지금 아이를 원어민 일대일 수업도 하는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같이 심화 수업을 위해 수학 학원도 알아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누적된 학습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 때문이 크지만, 코로나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교육 불신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등교수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학생들의 각종 결손 회복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생애 누적 결손을 추적하기 위해 초3과 중2 대상 3년간 종단조사도 실시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여태 뭐하다가 이제야 나서는 것이냐고 한다. 동의한다. 코로나19 장기화는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예상돼왔다. 학습결손과 학력격차, 교육불평등 심화도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방향만큼은 제대로 잡길 바란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한 보고서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 아동들을 ‘불리한 학생들’이라고 명명했다. 코로나19로 불리함의 규모는 커졌고 깊이도 깊어졌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심리·정서도 보듬어야 한다. 보고서는 “무너진 부분을 무시하고 기존의 시스템 내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간표대로 움직인다면 공교육이, 사회가 뒤처진 이들을 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달 말 나올 종합대책은 미봉책에 그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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