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 그리고 인간

2021.12.24 03:00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가출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열 살 남짓한 무렵이었다. 해가 진 뒤라 집 밖으로 나갈 용기는 없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있던 개집 뒤에 숨었다. 기대와는 달리 밤이 깊도록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오직 하나, 갈색 발발이가 꼬리를 흔들며 내내 옆에 앉아 있었다. 개를 묶지 않아도 되던 시절이라 밥때가 아니면 늘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녀석이었다. 그날 나는 비릿한 개 냄새만큼 짙은 연결의 힘을 발발이에게 느꼈다. 사람들이 흔히 호의나 우정이라고 표현하는 감정보다 더 끈끈한 무엇이었다.

부희령 작가

부희령 작가

‘개는 자신을 사람으로 여길까, 사람이 아니라고 여길까.’ 그날 이후 개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궁금증이다. 개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늑대는 무리의 유대감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개가 자신을 사람으로 여기는지 아닌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과 자신이 같은 무리에 속한다고 믿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장룽의 소설 <늑대 토템> 속 한족 청년은 새끼 늑대를 데려와 길들이려 애쓴다. 날고기를 주면서 새끼 늑대를 돌본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날카로운 송곳니 끝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생존의 무기를 잃은 새끼 늑대가 초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한다.

청년은 이전에도 ‘마음 아파’한 적이 있다. 늑대에게 떼죽음을 당한 가젤들을 보았을 때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가젤의 죽음을 슬퍼하는 청년에게 몽골인 노인은 설명한다. “초원에서는 풀이 가장 큰 생명체이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 작은 생명체는 큰 생명체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늑대와 사람조차 작은 생명체에 속하지. 너는 가젤이 가련하다고 하지만 풀은 가련하지 않으냐? … 가젤 무리가 필사적으로 풀을 뜯어 먹는 것은 살생이 아니냐?”

새끼 늑대는 초원에서 들려오는 다른 늑대들의 울음소리에 본능이 깨어난다. 쇠사슬에 묶인 채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늑대는 개가 아니니까. 석기시대부터 사람과 함께 살아온 개는 곡식을 소화할 수 있고 목줄을 견디도록 진화했다. 수렵과 목축의 시대에 협업자이던 위치도 변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끈끈한 감정의 충족을 제공한다. 개의 몸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형태로 개량되었고, 그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생존의 현장에서 어떤 동물은 사람과 협업했고 어떤 동물은 경쟁했다. 인간이라는 종이 소총을 사용하여 먹이 사슬의 꼭대기로 올라서기 전에는, 협업자도 경쟁자도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로 존중받았다. 기술문명의 등장 이후 협업자는 인간의 식용으로 사육되거나 ‘반려’가 되었다. 경쟁자는 절멸의 길로 갔다. 이즈음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보일 때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떠올린다. 피착취자로서 노예, 여성, 동물의 삶이 거쳐온 역사에는 비슷한 장면이 많다.

돌이켜 보면 인간은 거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길을 마련했다. 생태계와 기후 위기 또한 그럭저럭 다룰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기를 초래한 인간 욕망의 무한함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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