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필요 없어

2022.02.24 03:00 입력 2022.02.24 03:03 수정

[임의진의 시골편지] 말이 필요 없어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모르고 들어도 가슴에 훅 와닿는 느낌. 동창 중에 영어 수업마다 잠만 핑핑 자던 녀석이 있었는데 팝송은 좔좌르르 외워 불렀어. 알고 보니 음반 테이프를 반복해서 틀고 받아 적은 것. “아저씨~콜 투쎄 알라뷰.” 스티비 원더의 노래에 아저씨가 나오는 지경. 그래도 뭐 우리는 그게 사랑 노래인지, 빨리 전화해달란 소리인지 느낌으로 알아차렸지. 언젠가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편지를 봤어. 가장 사랑하는 노래가 무어냐 물으면 슈베르트의 ‘봄에’라고 답하겠대. “고요히 언덕비탈에 앉았다네. 청명한 하늘을 봐. 푸른 골짜기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태어나서 처음 봄볕을 만끽했던 곳이라네. 내가 얼마나 행복했던지….” 손열음씨는 이 곡을 설명하면서 “슈베르트의 가곡들이라면 가사를 모르고 듣는 것도 죽을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종종 대단치 않은 시들마저 천상의 음악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슈베르트니까”라고 했다.

봄볕 창가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 일 자체가 봄날 풍경의 완성이 된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한 친구가 생전 처음 해외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너무 피곤해 계속 잠을 잤대. 식사도 거른 채 말이야. 승무원이 깨어난 그에게 뭘 드시겠냐고 물었어. 답이 없자 채식주의자인 줄 알고 “베지테리언?” 하고 묻더래. 베지테리라는 나라가 있나 보다 생각했지. 아주 단호하게 “아임 코리안” 승무원이 조크인 줄 알고 웃고 가더라고만.

산들바람이 융융거리더니 남새밭에 푸른 싹들이 솟네. 뜰엔 벌써 수선화 애기손톱이 보여. 새들이 무슨 정찰기 염알이꾼처럼 마당을 순회하다 가곤 해. 봄볕 쬐면서 커피와 빵을 먹는 내 습관을 기억하는 것 같아. 먹다 남긴 빵부스러기를 물고 재빠르게 내뺀다. 불구덩이 같은 경쟁의 세계와 다른 순환의 세계가 여기에 있어. 다시, 봄날이다. 봄의 언어를 따로 배울 필요 없어라. 그냥 말이 필요 없어. 진심은 느낌으로 충분히 통해. 말의 홍수 속에서 그대 상처 입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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