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웹스터, 알로에틸렌, 2022, 리넨에 오일, 213.4×304.8㎝ ⓒEmma Webster. 사진 제공 갤러리 페로탕

에마 웹스터, 알로에틸렌, 2022, 리넨에 오일, 213.4×304.8㎝ ⓒEmma Webster. 사진 제공 갤러리 페로탕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지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은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지층을 모색하는 계기도 된다.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이던 시기, 지인으로부터 오큘러스 퀘스트를 선물받은 에마 웹스터는, 이 VR 도구 덕분에 물리적 한계에 억눌리지 않고, 입체적인 상상력을 눈앞에 펼쳐볼 수 있었다. 시간의 제약, 재료의 속성, 중력의 무게는 현실에 구현 가능한 형태를 제한한다. 반면, 가상세계 안에 빚어 넣는 입체가 시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은 한없이 유연하다. 현실에는 세울 수 없는 형태의 조형물을 가상의 공간에 배치하는 일은 가볍고 간단하다.

웹스터는 자신의 작업 과정 안으로 오큘러스 퀘스트를 적극 포함시켰다. 그의 스케치, 드로잉을 VR 프로그램을 통해 3차원적 형태로 변형한 후, 렌더링을 거쳐 출력한다. 다음 단계는 이렇게 출력한 이미지를 가장 오래된 장르인 회화로 옮기는 것이다. 작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을 자연스럽게 혼용하여 우리 눈앞에 제시하는 풍경은, 있을 법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세계다.

‘알로에틸렌’은 자연을 상징하는 알로에와 플라스틱의 주원료 에틸렌을 합성하여 작가가 만든 단어다. 일종의 초록빛 플라스틱 숲인데, 이름이 지시하듯 ‘알로에틸렌’은 환경문제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전한다. 초록빛은 식물의 건강한 생명에너지를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자연의 표피를 모방하는 플라스틱의 속성을 은유하기도 한다.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알로에틸렌’의 풍경 안에 사람은 없다. 작가는 자신의 풍경 안에서만큼은 자연을 망가뜨리는 인간의 개입을 차갑게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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