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난 것처럼

2023.01.27 03:00 입력 2023.01.27 03:03 수정

긴 연휴 동안 집콕하며 하루 두 끼씩 집밥을 차려 먹었다. 군에서 제대한 아들과 객지 생활하는 남편을 위해 나름 솜씨를 발휘해보았으나 한숨이 그치질 않았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맛도 맛이거니와 음식물쓰레기 하며 포장재, 설날 선물 겨우 몇 가지가 이렇게까지 쓰레기가 나올 일인가 아득했다. 날씨마저 혹독해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가는 걸음이 무겁고 화가 났다.

설날 연휴 말미 영하 20도를 오르내린 올해 ‘최강 한파’는 지구온난화로 제트기류가 물렁해져서 북극발 찬 공기가 한반도로 막힘없이 내려오는 ‘하이패스’가 열렸기 때문이라니, 온난화의 아이러니다. 때 없이 피어나는 봄꽃에 동면에서 깨어난 누룩뱀, 눈이 소복하게 내린 제주도가 낯설고 두렵다. 구글코리아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기후변화’라는데 설날 특집 하나 없이 흘려보냈다. 가스요금 오른 것 말고는 일상생활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 호박에 싼 비닐봉지 하나, 버섯을 담은 플라스틱 박스 하나 바뀐 게 없다.

2019년 그레타 툰베리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연사로 초청되어 그 자리에 모인 기업과 정치의 리더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종종 어른들이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희망을 전해주길 바라지 않아요. 저는 여러분이 공포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저와 같이 두려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그러니까요.”

집에 불이 났다면 어떻게 할까. 누구라도 미친 듯이 불 끄는 데 집중할 것이다. <존 도어의 OKR 레볼루션: 스피드&스케일>은 바로 그런 책이다. 존 도어는 2022년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11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스탠퍼드대학에 기부해 ‘스탠퍼드 도어 지속가능스쿨’을 설립했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손실보다 대응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투자자다운 통찰의 시작은 이렇다.

그는 2006년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시사회를 보고 딸이 말한 소감에 충격을 받는다. ‘무섭고 화나요’ ‘아빠, 아빠 세대가 이 문제를 일으켰어요. 그러니까 해결하세요’. 이 놀라운 실천가는 딸의 ‘두려움과 분노’에 2006년부터 그린테크 투자로 응답했고 마침내 지구 차원의 기후대응 솔루션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대안을 찾아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 혁신가들과 대화하며 2050 넷제로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부, 기업, 시민단체, 예술가, 시민들의 ‘핵심 행동’들을 제안한다.

찬찬히 읽다보면 지금 우리나라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기후대응 행동의 빈칸이 보인다. 우리는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아직은 글자로만 존재하고, 협력의 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설을 쇠어야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된다. 인류 공통의 목표에 환경단체로서 목소리가 낮았다. 툰베리들의 두려움이 행동으로 연결되도록 새해 결심을 되새겨본다. 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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