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세요

2023.03.04 03:00 입력 2023.03.04 03:01 수정

동대문시장에서 패션사업을 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커플이 열심히 노력해 가게를 일궜다. 고졸 학력이지만 해외 유학 다녀온 디자이너 못지않게 좋은 디자인을 선보여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신상품이 나오기 무섭게 주문이 들어오고 일 년에 두 번 휴가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유럽 패션탐방을 다녔다. 그런데 주문이 갑자기 뚝 끊어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봉쇄정책 탓도 있지만, 한·중관계가 악화하면서 혐한감정이 심해졌기 때문이란다.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 지방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문과에서는 드물게 ‘자격증’을 주는 학과라서 작년까지 신입생 모집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70%밖에 충원하지 못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도서관 사서의 증원을 동결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그래도 졸업할 때쯤에는 다시 늘어날 수 있지 않냐”고 했더니 학생과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한다.

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사로 일했던 지인이 있다. 피해자와 경찰을 연결하고, 지역사회에서 젠더 평등 관련 교육과 캠페인을 열심히 했는데 상담소가 작년 말에 문을 닫았다. 예산지원을 해주던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여가부가 없어지더라도 업무는 다른 부서로 이관된다면서 애써 희망을 가져보았으나 어렵사리 상담소를 운영하던 공익재단이 이 기회에 문을 닫겠다고 나섰다. 성폭력 범죄는 수그러들지 않지만 이제 상담사들이 일할 곳은 없다.

모두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실 이들은 정치색이 없다. 조금 폭을 넓히면 변화는 더 크다. 기후생태위기를 정파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 속에서 생태환경,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전환교육, 기후대응을 하던 사람들은 대개 침잠하고 있다. 재작년 서울시장이 바뀌며, 작년 대통령이 바뀌며 시작된 일이다. 시민단체가 모두 선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노조 탄압으로 지지율이 올라가는 걸 보면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시민단체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신규 등록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시민운동의 힘을 약화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겨울, 유럽의 에너지난만큼은 아니더라도 부쩍 오른 도시가스 요금으로 걱정스럽던 추위가 물러났다. 그런데 봄이 되었지만 환한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건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은 아닌 것 같다. 에너지난을 일으킨 야만적 전쟁은 계속되고 뉴질랜드의 홍수, 튀르키예·시리아의 대지진 같은 참사 소식이 이어진다. 당장 도심 한복판의 참사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뒤, 어떤 설명도 위로도 받지 못한 채 겨울을 보낸 유가족들이 있다. 지금은 나라 안팎으로 거칠고 힘든 시기임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여러 논란을 떠나 “변화하는 시대에 대비하지 못해서”라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 조상들은 대비하지 못했다 치자. 그럼 지금 우리는 잘 대비하는 걸까. 모든 이들이 자기 시대를 가장 도전적으로 여기겠지만, 지금 시기가 특히 그런 것은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이 환란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을 밀어주고 수출을 늘려 일자리를 만드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뛰어나고 정직한 지식인들의 의견이다. 정말 변화에 대비하고 싶다면 미국과 일본만큼 중국을 고려하는 실용외교를 펼치고, 가장 가깝고 친근한 문화시설인 도서관이 잘 운영되도록 사서를 배치하며,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해결하면서 남녀 대결을 넘어 공동체가 화합하는, 그래서 그토록 원하는 출생률도 높이는 정치를 펼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한 말을 내뱉고 갈라칠수록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정치구조에서 다원화되다 못해 극단화되는 여론을 어떻게 공동선의 방향으로 모아갈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 복잡해진 세계에서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지속적인 대화와 설득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올해는 정말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인데 남북뿐 아니라 남남도 내전 상태라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건전한 가치를 갖고 묵묵히 일해온 분들,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 페미니즘 시각에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여성들…. 정말 거대양당 빼고 모두 모여서 환한 기운을 전파하는, 그런 자리가 마련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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