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계약의 공정성

2023.03.10 03:00 입력 2023.11.16 17:10 수정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세대 간 계약의 공정성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다’는 푸념은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적혀 있고, 소크라테스도 언급했다고 하니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세대 갈등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독 심하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듯하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최근 세대 갈등 논란의 중심에는 연금개혁 문제가 놓여 있다. 청년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는 것에 반대한다. 이유는 자신들 부담으로 윗세대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의 세대 갈등은 윗세대가 청년세대의 버르장머리를 못마땅해한 것이지만, 지금의 세대 갈등은 청년세대가 윗세대의 불공정에 항의하는 것이다. 갈등의 차원이 다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연금 문제가 세대 간 불공정 논란으로 번진 까닭은 비용 부담 집단과 혜택 수혜 집단이 분리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이다. 연금은 근로세대가 보험료를 내고, 노인세대가 급여를 받는다. 물론 근로세대가 보험료를 내는 이유는 나중에 노인세대가 되었을 때 급여를 받기 위함이다. 이처럼 근로세대 비용 부담과 노인세대 혜택 수혜가 대를 이어 이뤄지는 것을 ‘세대 간 계약’이라고 한다.

세대 간 계약은 삶을 지속하는 기본 원리이다. ‘근로세대가 일해서 돈 벌고 그걸로 자식 키우고 부모 부양하는 것’에 의해 인류는 삶을 이어왔다. 과거에는 주로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 세대 간 계약이, 이제는 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부모 자식 사이라도 자식한테 별반 해준 것 없는 부모라면 당당히 혜택을 주장하기 어렵다. 하물며 가족도 아닌 사회 전체의 세대 간 계약이라면 어떻겠는가. 젊어서 100을 부담했는데, 나이 들어 50밖에 못 받는다면? 이런 계약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공정하지 못한 계약은 지속되기 어렵다. 계약이 공정하려면 부담과 혜택의 배분이 엇비슷해야 한다.

부담과 혜택 배분 엇비슷해야 공정

세대 간 회계라는 것이 있다. 세대별로 정부에 낸 비용(조세+보험료)과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연금 및 기타 복지 혜택 등)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세대를 청년(어린이 포함)세대, 중장년세대, 노인세대의 셋으로 구분했을 때, 각 세대의 회계는 어떻게 될까? 지금 두 명의 근로자가 한 명의 노인을 부양한다면, 30년 뒤에는 두 명의 근로자가 세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노인부양비가 계속 높아지니, 세대가 내려갈수록 적자일 듯싶다. 그렇다면 세 집단회계의 총합이 0일 때, 청년세대는 적자, 노인세대는 흑자, 가운데인 중장년세대는 본전치기일까. 청년세대는 확실히 적자이다. 하지만 중장년세대와 노인세대는 셈이 간단치 않다.

노인세대 중 국민연금 수급자는 낸 것보다 아주 많이 받는다. 게다가 70%는 기초연금도 받는다. 또 장기요양보험 혜택도 누린다. 이분들이 젊었을 때는 조세와 보험료 부담이 지금보다 꽤 낮았다. 확실히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그러니 노인세대의 회계는 엄청난 흑자일까. 세대 간 회계의 맹점은 정부에 납부한 것과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만 따진다는 점이다. 세대 간 계약의 공정성을 따지려면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도 포함한 사회 전체에 대한 기여와 수혜를 따지는 것이 온당하다.

사회 전체적인 노인세대의 기여는 두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의 물적·인적 자본을 향상시켜서 생산성을 높인 것, 즉 경제성장을 이끈 것이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잘해야 동남아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식들을 많이 낳고 길러서 오늘날의 근로세대 규모를 키운 것이다. 아무리 노인세대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 과거에 납부한 세금과 보험료보다 많다고 해도, 그분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것을 모두 더하면 받는 것보다 기여한 것이 훨씬 많다(더구나 노인세대가 중장년일 때는 정부 지원 없이 개인 돈으로 부모 모시고 아이 키웠다). 나의 부모와 삼촌·이모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장년세대는 어떨까? 나를 포함한 중장년세대는 부모세대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성장했다. 그렇다고 부모세대만큼 경제성장을 이끌지도 못했으며, 자식을 많이 낳고 길러서 미래의 근로세대 규모를 키우지도 않았다. 정부 부문만 고려하든, 사회 전체로 따지든 중장년세대는 확실히 흑자다. 중장년세대의 일인으로서 부모세대보다 혜택이 많은 것은 행운으로 여기고 고마워할 일이다. 하지만 자식 세대가 많은 부담을 지는 것도 너희가 박복한 탓이니 참으라고 할 수 있을까.

공정성 향상이 국가의 중요한 역할

청년세대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굳이 변명한다면, 한국의 경제사회가 요 모양 요 꼴인 것이 중장년세대가 자식 세대를 희생시키면서 자기 이익만 챙겼기 때문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시대든 대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비록 예전에는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을 만들어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다짐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노인세대가 젊은 시절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했던 것이, 역사적 사명감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필부와 필녀는 자신과 가족이 잘되기 위해 애쓸 따름이다. 다만 각 시대 경제사회구조와 정치역량의 차이로 인해 각자를 위한 노력이 사회 전체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고, 각자는 열심히 살아도 사회 전체는 점점 나빠지기도 한다.

개인의 최선이 사회 전체로는 득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기에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부모 봉양과 자식 양육 부담이 전적으로 가족에게 부여되던 시절에는 국가가 세대 간 혜택과 부담 배분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봉양과 양육의 책임을 가족과 국가가 분담하며, 국가 몫은 점점 커진다. 세대 간 혜택과 부담의 공정한 배분을 통해 세대 간 계약을 지속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중장년세대는 자기 자식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지극 정성이다. 다만 자기 자식한테만 그럴 뿐, 사회 전체로서 다음 세대를 위한 대비는 영 부실했다. 청년들이여, 중장년세대를 싸잡아 비난하지는 말자. 그 대신 정부에 세대 간 계약의 공정성을 높일 것을 강력히 주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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