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삶과 숫자

2023.03.11 03:00

미야지마 다쓰오(Tatsuo Miyajima), Changing Landscape / Changing Wall, 2022. 촬영 오정은

미야지마 다쓰오(Tatsuo Miyajima), Changing Landscape / Changing Wall, 2022. 촬영 오정은

여러 개의 LED 불빛 숫자. 디지털시계의 기호 같은 그것이 순차적으로, 또는 역순으로 카운트되고 있다. 건축 공간 안에서, 때로는 조각 곁에서 그들 숫자는 각기 상대적인 속도로 점멸하여 움직인다. 기존의 단일한 시간 개념에 저항한 각기 고유한 시간 속도를 투영해낸다. 1부터 9까지의 수 안에서 변화하며, 한차례도 멈추지 않고 끝없이 반복된다.

미야지마 다쓰오의 작품은 그런 LED 숫자의 환원과 관계성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부른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각각의 속도를 나타내듯, 함께 놓인 동시에 별개로 움직이는 숫자 장치로써 말이다. 일견 명료하고 과학적인 작업이지만, 다층적 숫자 사이를 걷는 관람객의 인식과 풍경 속에 현전하여 신체적이고 명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제해온 숫자 0은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총체적이고 무한한 것이자, 무아의 궁극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쓰오의 깜빡거리는 숫자를 보는 관람객은 각자 나름의 보폭에 맞춰 사색을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매일 휴대폰 알림으로 전해지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최근 튀르키예 지진 피해로 목숨을 잃은 5만여명의 희생자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참사 소식이 뉴스로 전해질 때마다 누적 집계량으로 보았던, 이름 모를 누군가의 생사 면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치화된 기록, 계량화된 정보 속에 담기지 못한 개별 군상의 이야기가 그제서야 나지막한 소리를 낸다.

다쓰오는 인류 공통의 기호로 삶을 압축해 담아냈지만, 우리는 거기서 어떤 누군가의 숨이 점멸하는 것과 생의 비극과 고단함까지 보게 된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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