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현상

2023.06.13 03:00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주목해야 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현상

국제변동과 미국 내 위기가
맞물리게 될 경우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디로 가게 될까

또 지구화에 깊숙이 물든
한국의 미래와 선택도
갈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가 돼가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돌풍의 성과를 떠나
그가 표상한 현상의 의미를
짚어봐야 할 이유다

이제 세상은
‘공식적 주류 담론’만 보다
이해할 수 없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도 2020년처럼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두 노인의 김빠진 2차전으로 귀결될 듯 보였다. 그런데 민주당 쪽에서 작지만 중요한 이변이 등장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6월 초에 있었던 CNN 등의 세 군데 여론조사 평균으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20%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에 대한 지지를 고려해보겠다고 호의적으로 응답한 이들이 44% 더 나왔다. 물론 아직 바이든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공화당에서 트럼프 후보의 경쟁자로 몇 년간 회자되어온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넘는 위치를 점했음을 보여주는 숫자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물론 그에게는 ‘케네디’라는 큰 정치적 자산이 있다. 1960년대에 큰 기대를 얻었지만 모두 비극적으로 암살당해 미국인들의 기억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 정치인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이며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치경력이 전혀 없는 그가 올해 3월 초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불과 3개월 만에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실로 놀랄 만한 사건이다. 게다가 그의 이러한 돌풍의 근저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사회와 정치가 겪고 있는 극도의 내홍이 버티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의 선전에 아주 불편한 입장을 표현하는 쪽이 있다. TV 뉴스와 주요 신문 등의 주류 언론 매체들이다. 이들은 대개 케네디 주니어를 아주 위험한 혹은 언급할 가치도 의심스러운 ‘음모론자’라고 보는 입장이다. 케네디 주니어는 환경운동에 나선 변호사로 이름을 얻었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 미국 정부와 언론 매체가 거대 제약회사에 장악당해 가지가지의 백신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바 있다. 특히 그의 발언 수위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급격히 높아졌고,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여기에 맞선 백신도 모두 거대 제약회사와 미국 정보기관들이 거대한 수익과 미국인들에 대한 통제를 위해 꾸민 음모라는 주장을 떠들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로 그야말로 극단적인 말잔치를 벌였다는 것이 주류 언론이 보는 케네디 주니어의 행보였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자들은 모조리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 ‘총기 난사 사건은 제약회사의 우울증 치료제 때문에 생겨난 사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음모로 촉발된 것이다’ ‘5G는 미국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등등. 그래서 미국의 주류 언론은 케네디 주니어의 선전은 말할 것도 없고 출마 자체가 유감스러운 일이며,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되면 곧 사그라들 해프닝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케네디 주니어는 이에 대해 거세게 맞받아치고 있다. 이미 오래전 자신이 제약회사의 권력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이러한 주류 언론 매체의 ‘탄압’은 시작되었으며, 자신의 말과 행동을 멋대로 자르고 붙여서 자신을 황당한 인물로 왜곡해왔다는 것이다. 자신은 모든 백신을 반대한 것이 아니며 자기 아이들에게도 백신을 접종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자신은 그저 조속한 평화협정을 촉구했을 뿐이며 자신의 아들까지 몰래 전쟁에 뛰어들어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고 한다.

케네디 돌풍 근저엔 미국의 내홍

자신이 출마한 것은 지금 제약회사와 군수산업 등 대자본이 국가, 양대 정당, 언론 매체 등을 모두 장악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며, 노동자와 중산층 그리고 유색 인종들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전통적인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당을 회복해 여기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류 언론 매체와의 싸움은 예고된 것이며 오히려 자신이 출마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자신은 팟캐스트, 유튜브, 트위터 등의 ‘대안 매체’를 선거 플랫폼으로 삼아 이러한 ‘레거시 미디어’와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를 떠나서,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케네디 주니어 현상’의 근저에 깔려있는 미국 사회의 극심한 내홍이다. 이미 2010년대부터 트럼프 정권을 전후해 모습을 보였던 미국의 정치·사회적 위기는 코로나19 사태 3년을 거치면서 더욱 악화되어 지금은 기성 체제에 대한 심한 불신과 반감이 사방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치와 언론은 대기업과 자본 세력에 완전히 포섭돼 부패한 상태가 되었으며, 이들이 풀어놓는 온갖 ‘거짓말’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태라는 인식이다. 이를 보여주는 한 지표가 2022년 7월에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였다. 갤럽은 1993년 이후 매년 미국의 주요 제도 및 기관들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추적해왔던 바, 지난해에 파악된 상태는 30년간의 조사 중 최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과 대법원 등 주요 기관 전반에 대한 신뢰도도 사상 최저였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의회, TV 뉴스, 대기업, 신문에 대해 ‘상당히 신뢰한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각각 7%, 11%, 14%, 16%라는 처참한 숫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요컨대 미국인 10명 중 8~9명은 신문도, TV 뉴스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러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불신은 각종 ‘대안 매체’의 대두와 직결돼 있다. 유튜브와 트위터 등에서 자기 채널을 운영하는 조 로건과 터커 칼슨 같은 개인들은 실시간 접속률로 이미 CNN이나 폭스 TV를 훨씬 앞서고 있는 상태이다. 케네디 주니어는 ‘트위터 스페이스’에서 일론 머스크와 화기애애한 대담을 나누었고, 트위터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잭 도시는 이미 공개적으로 케네디 주니어를 지지하고 나섰다. 물론 이 대안 매체의 목소리는 가지각색이지만, 미국의 기성 정당과 국가, 언론 매체 등으로 이루어지는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사태가 그러한 불신이 증폭되고 확산되는 계기였다고 보는 흐름도 분명히 나타난다.

위험 요소 뒤엉킬 땐 미래 예측 불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공화당과 우익 세력의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이야기되던 ‘음모론’과 ‘포퓰리즘’의 흐름이 이제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으며, 인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파상적으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주류 언론 매체의 시각으로 볼 때, 어처구니없는 위험한 ‘음모론자’에 불과한 케네디 주니어가 3개월 만에 그것도 민주당 지지자 20%를 획득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미국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내홍이 있다.

미국에서 비록 남북전쟁과 같은 전면적 무장 충돌은 아니라고 해도 모종의 ‘내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는 지식인과 학자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의 불길한 예감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27일 영국의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업인 ‘유고브(YouGove)’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향후 10년 안에 미국에 ‘내란’이 터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3%의 미국인들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가능성이 낮다’고 본 이들은 35%였고, 14%는 아예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나는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4월 말 어느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지정학적 구조 변동, 금융질서의 위기, 지구적 가치사슬의 변화, 서방 국가들의 정치적 위기 심화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달갑지 않은 일들이지만 이미 하나씩 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거나 되어가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착종, 즉 ‘뒤엉킴’을 일으키게 되면 그때부터의 상황 전개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어진다는 데에 있다. 지금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3차 대전으로의 비화”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미·중 갈등과 같은 국제적 변동이 미국 국내의 이러한 정치·사회적 위기가 맞물리게 될 경우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과연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지구화에 깊숙이 물들어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선택도 갈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가 돼가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어느 만큼의 성과를 거둘 것인지를 떠나서, 그가 표상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하고 의미를 짚어보아야 할 이유이다. 세상은 이제 ‘공식적 주류 담론’ 같은 것만 바라보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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