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좋빠가’에 맡길 것인가

2024.02.12 20:01 입력 2024.02.13 17:19 수정

[이범의 불편한 진실] 의대 정원, ‘좋빠가’에 맡길 것인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는
R&D 예산 삭감 등을
연상시킨다
이른바 사이다 정책으로
인기를 높이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자칫하면
사회적 토론을 통해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과정을 봉쇄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의대 정원에 한정 말고
폭넓은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해봐야 한다

부디 공론화 장이 마련되고 이
과정에 의사들도
적극 참여하길 촉구한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릴 계획을 밝히자, 진보 성향 커뮤니티들의 반응은 ‘팝콘각’이라는 게 주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 정원을 늘리려다가 의사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어서 열받았었는데, 이제 윤석열 정부가 증원을 폭압적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니 팝콘이나 먹으며 재미있게 싸움구경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정책의 추진 방식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일단 증원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고 급작스럽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증원하려던 정원은 400명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증원하려는 정원은 2000명이다. 무려 다섯 배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인데 갑자기 5058명으로 65%를 늘리는 것이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온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2035년에 의사 수가 1만명 부족할 것으로 보고, 5년간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 유지하면 1만명이 채워진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상황을 고려하여 정원의 향방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대로 2035년까지 1만명을 늘린다 해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인구당 의사 숫자가 적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고려하면 더더욱 모자랄 것이다. 정부는 ‘1만명 부족’이 “다수의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수치라고 간단히 밝혔을 뿐, 세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 40개 의대에 정원을 얼마나 늘리기를 희망하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11월에 수요조사 결과 증원 요청분이 2151~2847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수요조사를 하게 되면 각 의대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한 숫자를 답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의대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집계된 증원 요청분은 공교롭게도 정부가 정한 정원 규모 2000명과 근접해 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물론 본격적인 의대 교육은 본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예과 2년간에 해당하는 2025~2026년 사이에 준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대 교육과정은 유난히 실습의 비중이 크고, 병원과 조율하거나 공동으로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정부가 목표로 삼은 증가폭의 ‘평균치’가 65%인 것이니 일부 의대는 100%쯤 증가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단번에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사들을 괘씸하게 여기며 ‘팝콘각’을 즐기겠다는 심리가 일어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온건한’ 의대 증원 정책에 맞서서 2020년에 일어났던 의사들의 반대운동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물론 이 투쟁에서 의사들은 승리했다. 코로나19 시기에 의료 공백에 따른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은 구제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들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다. 게다가 성비위·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수술실 CCTV 논란 및 대리수술 사건 등이 이를 심화시켰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서 의대 정원 증가에 찬성하는 비율이 무려 89.3%나 된 것은 상당 부분 의사들의 자업자득이다.

‘좋빠가’ 방치는 민주주의 좀먹어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는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였다. 그런데 ‘좋아 빠르게 가’는 과연 좋은 것인가? 이번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나 ‘수능 킬러문항 배제’, 그리고 지난 대선 공약이던 ‘여성가족부 해체’를 연상시킨다. 이른바 ‘사이다’ 정책을 내놓고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인기를 높이고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려는 태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칫하면 사회적 토론을 통해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과정을 봉쇄해 버릴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민주주의를 퇴보시킬 수 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의대 정원 확대에 한정하지 말고 보다 폭넓은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리는 두 차례 공론화를 경험했다. 하나는 2017년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2018년 대입제도에 대한 것이었다. 수백명이 장기간 참여한 토론 끝에 신고리 5·6호기는 계속 건설하기로 했고, 대입제도는 비교과를 축소하고 정시 정원을 30%로 늘리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토론 과정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느 집단도 결론에 대해 심각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내가 의대 증원을 공론화에 부치자는 것은 증원의 규모와 속도에 대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증원과 밀접하게 연관된 (그러나 증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두 가지 주제가 반드시 함께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제는 이른바 ‘필수의료 기피’ 문제다. 지역적 의료 공백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지역의사제’(특정 지역에 10년간 의무 근무)를 추진하다 중단했는데, 윤석열 정부가 이를 이어받아 ‘지역필수의사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 기피현상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는 필수의료 영역의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기 위해 문재인케어도 없앤 마당에 과연 건강보험 수가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료 인상 일정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

비급여 진료 ‘밑 빠진 독’ 될 수도

의대 증원과 함께 공론화에 부쳐져야 하는 두 번째 주제는 ‘비급여 진료’ 문제다. 의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해왔는데, 최근 들어 인기가 한층 더 높아졌다. 그것은 의사 소득이 2010년대 이후 빠르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2014년 대비 2021년 의사들의 평균 소득이 단 7년 만에 55.5% 증가했다(치과의사·한의사 포함). 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개원의(전문의) 평균 소득은 노동자 평균 소득의 6.8배로 회원국 가운데 1위다. 그렇다면 최근 이러한 가파른 증가세의 이유는 무엇인가? 위 7년간 평균 국민소득의 증가는 22.0%에 불과하여, 55.5%에 달하는 의사들의 소득 증가를 절반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비급여 진료가 증가한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실손보험이 보편화되면서 비급여 진료를 손쉽게 권할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피부과·성형외과 등에서 이뤄지는 미용 목적의 시술이 의사들의 수입을 대폭 증가시킨 것이다.

특히 비급여 진료는 ‘밑 빠진 독’이 되어버릴 수 있다. 지금처럼 비급여 진료가 확대되고 의사들이 피부과·성형외과로 빠져나가면 의대 증원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정부가 몇 가지 원론적인 대응방향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보다 폭넓은 대중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시도되어야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탈원전, 여성가족부, 국민연금 같은 문제들도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예를 들면 최근 연금 전문가 세 명이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라는 책을 냈다. 다소 암울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가장 선명하면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재정을 지금부터 조기 투입하면 21세기 말까지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라 기금이 줄어들고 나서 정부 재정을 투입하게 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꼴이 되어, 많은 청년들이 우려하듯 미래 세대의 부담이 훨씬 무거워진다는 얘기다. 충분히 공론화에 부쳐볼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세상이다. ‘팝콘각’에 빠져 ‘좋빠가’를 방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태도는 불안을 키우고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민주주의는 종종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결국 사회를 결속시키고 사람들을 성장시킨다. 부디 공론화의 장이 마련되고 이 과정에 의사들도 적극 참여하기를 촉구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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