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용 원칙’의 한계

2006.11.29 18:19

1987년 봄 민주화운동 이후 거의 20년이 된 지금에도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폭력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은 지속적으로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6년 1월19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평화로운 집회 및 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위원회’를 설치했다. 정부는 이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해 평화시위를 위한 사회협약을 만드는 등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집회·시위의 전 과정에 대해 사회협약이라는 형태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회단체와 국민에 대해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에 불과하다”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

-공권력의 엄정한 법집행 타당-

지난 22일 전국에 걸쳐 매우 격렬한 폭력 집회·시위가 발생했다. 그것에 충격을 받은 정부는 24일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만이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한다”며 법 집행의 엄정성을 강조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또한 법무부장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폭력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에는 도심 집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법 집행을 엄정히 하겠다고 밝힌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시위대와 경찰이 공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폭력 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대응이 미온적이었음을 정부 당국자가 고백한 것이고,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법 위반 행위를 묵인해 온 온정주의를 배격하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므로 우리 모두는 공권력의 권위가 추락하지 않도록 눈을 치켜뜨고 감시해야 한다.

법 집행을 원칙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옳으나 집회·시위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려 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한 단체의 집회 과정에서 폭력시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그 단체의 모든 집회 및 시위를 불허’하는 것은 헌법 제2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다.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란 사회적으로 배제된 약소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표명하는 정치적 행동의 권리를 포함한다.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의 집회·시위 문화는 단연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집회·시위를 하는 목적은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있다. 언로(言路)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여 변화와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회·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언론의 관심을 끌어서 시민들의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소수자 목소리 넓게 포용해야-

그러므로 집회·시위 문화 개혁은 언론 개혁과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안된다. 공론장이 제대로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한 한국의 집회·시위 문화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치 행위자들은 자신의 주장만 내세워서는 안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대화와 타협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언론은 집회·시위 사건을 보도할 때, 시위 참여자의 요구와 정책을 충실히 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 또 기자회견이나 평화시위가 폭력·과격시위에 묻히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 기자회견이나 평화시위 등을 통해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힘든 사회집단은 목청을 높이고, 경찰들과의 몸싸움도 불사하며 거칠거나 심지어 극단적 행동을 할 것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 실정법은 시위대의 합법적 활동 범위를 정하고 있고, 정부는 그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단연히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행동을 넓게 포용하는 ‘관용(tolerance)의 원칙’이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함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설동훈/전북대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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