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성동·기정동

2013.06.14 21:36
김진호 논설위원

한반도 허리를 끊어놓은 비무장 지대 남북에는 민간인이 거주하는 마을이 각각 한 곳씩 있다. 대성동 마을과 기정동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남측 자유의 마을과 북측 평화의 마을이다. 분단 이전에는 모두 경기도 장단군에 속했던 마을들이다. 행정구역상 파주시에 편입된 대성동 마을에는 현재 51가구 214명의 주민이 주로 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두 마을이 국민적 관심을 끌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대성동 국민학교(초등학교) 옆에 48m 높이로 세운 태극기 게양대가 발단이 됐다. 얼마 뒤 기정동 마을에 더 높은 인공기 게양대가 설치됐다. 대성동 마을 게양대가 1982년 1월 99.8m로 높아지자 한 달 뒤 기정동에는 높이 165m의 게양대가 들어섰다. 경쟁의 끝이었다.

최전방 지근거리에서 근무하던 남북 병사들이 서로 큰 목소리로 “우리는 고깃국 먹었다. 너희는 오늘 아침 뭘 먹었냐”면서 자랑했던 냉전 시절의 이야기다. 높이 경쟁에서 명백한 패자는 남측이다. 그러나 기정동 마을보다 더 높은 게양대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포기한 것은 아니리라. 대성동 마을의 김동구 이장은 “‘이런 걸로 북한과 경쟁해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경쟁을 그만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북 간 유치한 자존심 경쟁 결과로 두 개의 게양대는 지금도 2.5㎞의 직선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다.

가로 18m·세로 12m의 대성동 마을 태극기는 특수천으로 만들어져 개당 180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워낙 크다 보니 바람에 찢기거나 추레해져 한 해 평균 10개 안팎으로 교체해줘야 한다. 게양과 하강 등의 관리를 하는 데만 한 해 960만원의 인건비도 들어간다.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도 제작·관리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남북 모두 쓸데없는 경쟁 끝에 지출하는 또 하나의 ‘분단비용’이다.

지난 12일로 예정됐던 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단장)의 격(格)을 둘러싼 기싸움 끝에 무산됐다. 지나간 시절의 해프닝 정도로 회자되던 대성동·기정동 국기게양대의 높이 경쟁을 연상시킨다. 또 얼마나 많은 분단비용을 치러야 할는지. 어쩌면 지난 31년간 성장을 멈췄던 대성동 마을의 국기게양대의 높이가 다시 꿈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정서’와 ‘국제기준’에 맞추려면. 갑갑한 6·15공동선언 13주년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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