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에 친숙한 힙합과 웹툰으로 북한 실상 알릴 것”

2015.09.10 21:14 입력 2015.09.11 01:18 수정

서울·독일서 전시회 여는 탈북 화가·래퍼 강춘혁씨

지난 3일 탈북 화가이자 래퍼인 강춘혁씨(30)가 스냅백(젊은층에서 유행하는 모자)을 눌러쓰고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현재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미술작가전’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강씨는 외모만 보면 남한의 평범한 청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군 온완구이다. 북한에서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8년 탈북했다. 그의 나이 열두 살 때였다.

“북한의 잇단 흉년으로 식량 배급이 아예 끊길 때가 많았습니다. 먹고살 수 없어 온 가족이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강춘혁씨가 자신의 드로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춘혁씨가 자신의 드로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씨는 북한을 떠나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북한에 다시 붙잡혀 가지 않으려면 중국에서 죽은 듯이 지내야 했습니다. 일을 해도 노예 취급을 당하고, 월급을 받지 못해도 따질 수 없었지요. 중국 공안에게 가족 모두 붙잡혀 뇌물을 주고 풀려난 적도 있습니다. 더 이상 중국에서 살 수 없어 ‘한국에 가자’고 결심했지요.”

강씨는 열여섯 살 때인 2002년 사촌형과 함께 기차와 버스를 타고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로 향했다. 한국인 관광객처럼 행세하며 여권도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경비대에 붙잡히면 뇌물을 주고 풀려났다. 한 군인은 신발, 시계, 옷까지 모두 내놓으라고 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외면당한 강씨는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까지 가야 했다. 다행히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엔 비슷한 처지의 탈북자들이 남한 땅을 밟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는 중국에 있던 부모를 캄보디아로 불러 함께 남한 땅을 밟았다.

하지만 16세 소년에게 남한은 낯선 곳이었다.

“학교에 적응할 수 없어 공부를 그만두고 막노동, 음식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림은 손에서 놓지 않았지요. 중국에선 한국 연예인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 팔기도 했습니다.”

강씨는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인권회의 전시에 북한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드로잉 10여점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는 못했다.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검정고시를 1년간 준비했고, 2010년 재외국민전형을 통해 홍익대 회화과에 합격했다.

지난해 강씨는 Mnet의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난 두렵지 않아 공개처형!”을 외치며 ‘탈북 래퍼’로 주목을 받았다.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상수동 힙합 공연장 ‘어글리정션’에서 상설 전시를 열고 있는 그는 올해 안에 힙합 앨범과 웹툰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정말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그래서인지 북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음악과 웹툰으로 북한 실상을 알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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