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민감한 질문만 나오면 ‘답변 거부’

2013.08.16 22:09 입력 2013.08.17 13:23 수정

구치소 찾은 여당 의원 만난 후 청문회 출석 결정

“작년 12월 권영세와 통화, 회의록 공개 상의” 실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16일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는 “형사재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이 있다”며 증인선서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그대로 증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심리전단 개편을 승인했나” “박근혜 정부에 서운한 감정은 없나” 등의 질문엔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원 전 원장은 이날 오후 2시 평소와 달리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채 이동명 변호사 등 변호인과 함께 청문회장에 출석했다. 책상 위에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며, 왼손 검지를 가끔 까딱까딱하는 것으로 감정변화를 드러냈다. 하지만 청문회가 맥빠지게 진행되면서 긴장이 풀린 듯 일부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에이, 아니야”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서울구치소를 찾은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접견한 뒤 출석을 결정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권영세와 회의록 유출 공모 새 의혹

지난해 대선 기간 중 박근혜 후보의 대선캠프 상황실장이던 권영세 주중대사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여부를 상의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야당에선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대선 국면에서 공모했음이 드러났다”고 공격했다.

원 전 원장은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여부를 놓고 당시 권 실장과 통화했느냐고 추궁하자 “회의록 공개는 엄청 힘들고 곤란한데, 국회 정보위에서 계속 공개를 하라는 입장이어서 (권 실장과) 상의했다”면서 “12월13일 정보위가 정회되는 동안 전화를 했다”고 실토했다.

박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비밀 대화록을 선거캠프 2인자인 실장과 논의했는데, 이거야말로 엄청난 이야기 아니냐’고 묻자, 원 전 원장은 당황한 듯 “개인적으로 가까우니까 상의를 한 거다. 저도 물어본 것”이라며 “정보위에서 계속 공개를 하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였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6월 권 대사가 지난해 12월10일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NLL 관련된 얘기를 해야 하는데…(중략)…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라고 했던 녹취록을 공개하고, 회의록 유출의 몸통으로 권 대사를 지목한 바 있다.

박영선 의원은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장이 선거캠프 상황실장과 상의했다고 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중요한 단서가 나온 것”이라며 권 대사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거부했다.

원 전 원장이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회의록을 보고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회의록을 가지고 이 전 대통령과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권 대사와 회의록 공개 여부를 논의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여권 커넥션’ 의혹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 대선개입, 댓글 작업 지시했나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며 “만약 국정원장이 대선개입을 했다면 그전에 이미 (국정원 직원의) 양심선언이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본인에게 유리한 사항만 대답하지 말라”고 질타했으나, 원 전 원장은 때로는 묵묵부답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원 전 원장은 “전혀 그런(선거개입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국정원 규정상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후보를 떨어뜨리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다”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검찰이 기소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전면 부인한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이 인터넷상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 반대하는 댓글 작업을 한 것을 두고는 “직원들에게 그런(댓글을 달라고) 지시를 한 바 없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에 개입하려면 직원 몇 명 시켜 댓글 몇 개 쓰도록 하겠느냐. 검찰에도 그 얘기를 강하게 했다”고 말했다. 사건 전후로 여직원을 만났느냐는 물음에는 “만난 적이 없다. 담당 차장으로부터 보고는 받았다”고 했다. 이어 “(국정원도 대북 심리전을 위해서는) 댓글을 달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 심리전단 확대개편을 놓고는 “북한이 우리나라 인터넷 부분을 해방구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과 관계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지 특정 정당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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