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핵독트린' 의미와 배경

2022.04.27 17:27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 한 연설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핵무기 사용 기준에 대한 언급이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며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는 즉각 김 위원장의 이 언급에 주목했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시대부터 ‘방위적 수단으로만 핵을 사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날 ‘국가 근본이익 침탈시 핵 사용’을 언급함으로써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019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꾸준히 핵능력 고도화에 매달려온 김 위원장의 ‘핵 독트린’이라고 할 만하다. 핵무기는 전쟁 억제용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으며, 핵 사용이 필요한 경우가 언제인지도 자신들이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핵무기에 의한 위협과 재래식 무기에 의한 위협은 물론 북한 체제유지에 위협이 될만한 모든 행위가 핵무기 사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이 말한 ‘국가 근본이익’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표현을 쓴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핵 사용에 대한 모호성을 증가시키고 위협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으로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 중 가장 낮은 사용 기준을 적용한 나라가 됐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이 같은 방침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적의 핵공격 대응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단일 목적’ 공약을 폐기한 것에 대한 대응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핵무기를 단일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핵 독트린을 변경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이 이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공개한 NPR(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단일 목적 핵사용 공약을 배제시켰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NPR은 “미국의 핵무기는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들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역할”이라고 밝히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북한의 핵 사용기준 변경은 미국이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라는 표현을 통해 적국의 핵 공격과 재래식 무기 공격은 물론 생화학 무기, 시어버 공격 등에 대해서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대한 대응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가 공공연히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핵전쟁의 문턱을 낮춘 것도 북한의 ‘과감한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 위협이 높아짐에 따라 한·미의 대응 수단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등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에 대한 논쟁이 재연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전부터 ‘동반 핵무장’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은 만큼, 한·미 동맹 강화와 미국의 확장억제 제고 등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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