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인물탐구

(2) 가족 이야기 - 박근혜

2012.12.04 22:24
이지선 기자

“나라와 결혼했다”…조카 사랑 끔찍

특권층 비판엔 “어머니께 근검 배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지난달 7일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서울 노원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걸투(GIRL TWO) 콘서트’에 참석했다. 토크쇼 형식의 이날 행사에서 박 후보와 학생들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손병호씨가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손병호 게임’을 했다. 게임에 참여한 한 학생이 “두 명 이상 남자와 데이트 안 해 본 사람 접어”라고 외쳤다. 박 후보는 손가락을 접지 않았다. ‘두 명 이상 남자와 데이트를 해본 적이 있다’는 얘기였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탄성과 웃음이 터졌다.

박 후보는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본받고 싶은 남학생이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배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자서전에는 스스로를 ‘미팅 한번 못해 본 대학생’이라고 적기도 했다.

또래들이 결혼할 즈음 박 후보는 부모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박 후보는 결혼에 대해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결혼은 언제쯤 할 거냐고 하면 “이미 나라와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주 선대위원장은 박 후보를 “화이트 골드 미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갖춘 30대 이상 미혼 여성을 말하는 골드 미스에 60세라는 박 후보의 나이를 빗댄 표현이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2) 가족 이야기 - 박근혜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잠깐 언급한 바 있다. 박 후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육영수 여사가 “네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니”라고 물었는데, 박 후보는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답변 못드리겠는데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귀띔해주렴. 좋은 벗을 만나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동생 박지만씨의 아들 세현군을 유난히 아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만씨는 서향희 변호사와 2004년 결혼해 이듬해 세현군을 낳았다. 지난달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조카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태어나서 저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며 “여러 가지 재롱을 부린 것도 기억이 난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면 케이크가 없을 때에도 허공에 대고 ‘후후후’ 하면서 촛불을 끄는 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잃고 싶지 않은 세 가지(2007년)에도 ‘조카 세현이’가 포함됐다.

한편에선 올케인 서 변호사가 삼화저축은행 법률고문을 맡은 것을 두고 로비 의혹 등이 불거졌고 ‘만사올통(올케를 거치면 안되는 게 없다)’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여동생 근령씨와 2008년 10월 결혼한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는 육영재단 문제 등을 둘러싸고 박 후보를 비방하고 허위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1960년대 말 청와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

1960년대 말 청와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

박 후보의 본관은 고령 박씨로,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2월2일 아버지의 부임지던 대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가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자 서울로 올라온 박 후보는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청와대에서 지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부드러운 성품으로 유명하지만 훈육은 엄격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자녀로서 특권 의식이나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박 후보는 1999년 펴낸 <나의 어머니 육영수>라는 책에 적었다.

“간혹 친척이 해외 여행길에 산 것이라며 저희들에게 줄 선물을 가져올 때면 어머니는 기뻐하는 저희들의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그 자리에서 친척을 나무랐다. 남이 안 가진 것을 갖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을뿐더러 건전한 시민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연유로 박 후보는 ‘특권층이고 서민들의 애환을 모른다’는 야권 비판을 편견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달 22일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근검절약 정신은 말도 못한다. 어머니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다”면서 “저는 지금도 어디 가면 전기 끄고 수도 잠근다. 특별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박 후보는 지속적으로 ‘아버지 후광을 등에 업었다’는 말을 들었고 5·16 군사쿠데타를 비롯해 아버지와 얽힌 과거사 인식은 야당의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지난달 26일 10·26 33주기를 맞아 박 후보는 “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고 했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박 후보는 끊임없이 평범함을 갈구했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1989년 11월29일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게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서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편해진다. 항상 폭풍우, 비바람, 번개 등 바람 잘 날 없이 불안하고 위태위태하여 마음 한 번 푸근하게 가져보기 힘든 것이 내 운명인가 하고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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