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행정관, 압수수색 이틀 전 “검찰과 얘기됐다” 보고용 대포폰 건네

2012.03.05 03:00

증언으로 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재구성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4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다음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장 주무관은 2010년 7월3일 밤 윤리지원관실 사무실에서 전임자인 김모씨를 맞았다. 그는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이 보내서 왔다고 했다. 장 주무관의 상관인 진경락 과장은 그날 밤 직원들에게 “사무실을 비우라”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사무실에 들어가야 한다며 장 주무관에게 남아 있으라고 했다. 김씨는 진 과장의 컴퓨터 앞에 앉아 USB를 꽂고 두 시간에 걸쳐 작업을 했다. 진 과장의 컴퓨터 데이터를 모두 지우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퇴근해서 잠들 무렵인 밤 11시쯤 장 주무관은 진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진 과장은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 아무도 모르게 점검1팀 컴퓨터를 부팅도 되지 않게 모두 지우라고 했다. 나중에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 진 과장이 최 행정관과 함께 차를 타고 송파구 방이동에서 강남구 일원동으로 이동하면서 전화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방이동은 최 행정관의 직속상관인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의 집이 있는 동네다. 장 주무관은 이들이 이 비서관 집 근처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일원동에 있는 김충곤 점검1팀장의 집으로 이동한 것으로 생각했다. 장 주무관은 5일 진 과장의 지시대로 오전 6시에 출근해 인터넷에서 ‘이레이저’라는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은 뒤 컴퓨터 데이터를 삭제했다. 5일 오전 총리실은 민간인 불법사찰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7일 오전 진 과장이 장 주무관에게 전화해 “최 행정관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진 과장과 최 행정관이 4차례 통화한 뒤였다. 장 주무관은 총리공관 인근에서 최 행정관을 만났다. 최 행정관은 진 과장과 점검1팀의 컴퓨터를 물리적으로 다 없애버리라고 했다. 강물에 갖다 버려도 좋고, 부숴도 좋다고 했다. 장 주무관이 머뭇거리자 최 행정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에 다 얘기가 돼 있으니 문제가 없다”며 안심시켰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진 과장이 “최 행정관이 시킨 일을 빨리 처리하라”고 독촉했다.

오후 2시30분쯤 최 행정관이 다시 오라고 해 3시에 만났다. 최 행정관은 “검찰이 내일쯤 압수수색을 들어오니 빨리 해야 한다”고 독촉하면서 대포폰을 건넸다. 최 행정관은 “오전까지 ‘EB(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의 약칭)’가 사용하던 전화기”라며 “앞으로는 그 전화기로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장 주무관은 돌아와 사무실에서 하드디스크 4대를 들고 경기 수원시의 한 업체로 가져가 디가우징(자력을 이용해 컴퓨터 자료를 복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작업을 했다. 대포폰으로 보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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